“쓰촨 가서 돈 쓰자” 의연금 관광 밀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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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중국 쓰촨(四川) 대지진은 불과 두 달 반 전의 일이다. 실상 엊그제 일이나 다름없다. 그런데도 쓰촨은 빠른 속도로 살아나고 있다. 회생하는 정도가 아니다. 더 나은 쓰촨으로 탈바꿈할 태세다. 그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답을 얻기 위해 현장을 찾았다.

“지진을 이겨내고, 재난에서 벗어나자(抗震救災)!”

“모두의 뜻으로 성을 쌓자(衆志成城)!”

지난 20일 쓰촨성 청두(成都)시 교외의 관광지 두장옌(都江堰). 난데없는 구호가 요란하다. ‘시베이랑(西北狼-서북 이리)’이란 글씨가 쓰여진 티셔츠을 입은 50여 명이 한데 모여 주먹을 불끈 쥔다. 두 사람에게 이유를 물었다.

관광객들이 지진으로 일부가 무너져 내린 문화재 ‘남교’ 대문을 통과해 2200여 년 전 건설된 홍수·가뭄 방지 시설이 있는 쓰촨성 두장옌 주변의 관광지로 들어가고 있다. [두장옌=진세근 특파원]

“우린 산시(陝西)에서 온 자연보호 단체다. 이웃 쓰촨의 형제들이 당하고 있는 고통을 함께 나누기 위해 여름 수련회를 이곳 두장옌으로 잡았다. 우리가 이곳에서 먹고 자는 비용이 형제들의 재난 극복에 도움이 됐으면 한다.” “중국 민족은 하나다. 같은 민족이 아프면 우리도 아프다. 그래서 달려왔다.”

입장권을 사기 위해 길게 늘어선 줄에 서 있는 한 여성은 “상하이(上海)에서 왔다. 우린 친목단체다. 매년 한 차례 여행을 떠난다. 동남아로 갈 예정이었다. 그러나 지진 후 마음을 바꿨다. 여비로 거둔 회비를 쓰촨에서 다 쓸 생각”이라고 귀띔했다. 이날 오전 10시쯤 두장옌 매표소 앞 광장을 메운 인원은 줄잡아 5000여 명. 이들은 거의 외지 관광객들이다. 금발의 서양인과 흑인들도 눈에 띈다. 완연한 성수기 때의 모습이다.

그러나 지난 주까지만 해도 사정이 달랐다. 두장옌 앞 매표소엔 바람만 지나갔다. 두장옌은 2200여 년 전인 춘추전국시대에 건설된 중국 최대의 홍수·가뭄 방지 시설이다. 물길을 가르고 수량을 조절하는 방식이 절묘한 데다 주변 풍경도 수려해 수많은 국내외 관광객이 몰리는 곳이다. 그러나 지진 이후 관광객의 발길이 끊겼다. 지진 지역에서 편안한 관광을 즐기기엔 왠지 불편하다는 느낌, 혹시 또 지진이 일어나면 어쩌나 싶은 불안감 등이 원인이었다.

장취안(姜權) 지우자이거우(九寨溝) 국제여행사 대표는 “지진 이후 여행업은 전멸했다. 그러나 이제 본격적으로 살아나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전국 각지에서 ‘의연금 관광’이 밀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관광을 떠날 바에 어려운 이웃이 있는 곳에 가서 돈을 쓰자는 취지다.

청두시에서 200여㎞ 떨어진 러산(樂山)시. 이곳 교외엔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미(峨眉)산이 있다. 3099m 높이의 아미산은 산 면적만 623㎢나 되는 광대한 산악지역이다. 수려하고 웅장한 산세, 정상의 보현보살탑, 청정한 공기, 아늑한 도시, 신비로운 빙하 등으로 사철 관광객이 꼬이는 곳이다.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곳 아미산에도 여지없이 지진의 피해는 밀려들었다. 매년 30만 명을 넘어서던 관광객이 돌연 사라졌다.

그 공백을 대만 동포들이 메우기 시작했다. 21일 오후 6시 아미산 공원 앞에서 성대한 환영행사가 열렸다. 아미산을 찾은 대만여행업계 대표들을 환영하는 자리다. 쓰촨성 관광국, 러산시 관광국, 아미산관리위원회가 모두 나와 이들을 맞았다. 버스에서 내리는 대표단 하나하나에 꽃다발을 걸어주고 꽃잎을 던져 맞이했다. 뜨거운 환영사에 이어 검술·꽃춤·검무 등 아미산 특유의 공연이 이어졌다.

타이베이(臺北) 여행업계를 대표하는 위레이(於累) 중화여행사 사장은 “쓰촨 지역으로 관광을 가겠다는 신청자가 급증하고 있다. ‘동포 돕기 여행’이란 새로운 프로젝트를 구상 중”이라고 밝혔다. 아미산관리위원회 두후이(杜輝) 부총경리는 “이곳 관광자원은 전혀 문제 없다. 한번 지진이 일어난 곳은 적어도 1000년은 큰 지진이 없다는 학설도 있다. 우린 각종 수단을 통해 이곳 관광이 건재함을 힘써 알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관광뿐이 아니다. 복구도 신속하게 진행 중이다. 상가가 밀집된 두장옌 타이핑(太平) 거리는 크레인과 불도저의 굉음이 하루 종일 그치지 않는다. 현장 감독을 맡고 있는 두칭(杜淸) 소장은 “두장옌은 관광객이 몰리는 곳이다. 하루 휴업하면 그만큼 손해다. 그래서 피해복구 자금이 끊임없이 밀려들고 있다”고 소개했다.

청두·두장옌·아미산=진세근 특파원

“안전 확실한 곳만 관광 재개” 우몐 쓰촨성 관광책임자 

“원촨(汶川) 대지진은 백 년(긴 세월을 의미)의 불행이다. 그러나 쓰촨의 풍경은 여전히 아름답다.”

쓰촨성 관광국 우몐(吳勉·사진) 부국장은 쓰촨의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것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지진 후 한국 기자를 처음 맞는 자리인 만큼 애써 준비한 흔적이 역력했다. 17일 청두시 인터콘티넨털 호텔에서 열린 ‘위기·기회·발전 제1회 중·한 관광논단’ 자리에서다. 쓰촨성 정부가 한국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마련했다.

-관광 부흥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나.

“무턱 대고 사방으로 뛰어다닌다고 될 일이 아니다. 우선 지역을 구분했다. 피해지역의 심각성 정도, 그리고 안전지역을 정확하게 나눴다. 그리고 각종 논단과 설명회를 통해 그 정보를 제공했다. 직접 타 지역에 사람을 파견하기도 했다. 물론 관광지역 내의 안전 확보는 기본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3단계다. 우선 국내 시장 회복을 위해 베이징(北京)·상하이(上海)·광저우(廣州) 등 대도시에서 설명회를 열었다. 다음은 이웃 국가에 대한 홍보다. 한국·일본·싱가포르·말레이시아·태국 등에 힘을 모을 것이다. 이번 중·한 관광논단도 마찬가지다. 그 다음은 유럽 국가를 대상으로 홍보할 예정이다.”

-현장을 돌아보니 복구 속도가 대단하다. 비결이 있나.

“뭣보다도 의지가 첫째다. 쓰촨 사람들은 중국에서 가장 독립심이 강한 주민이다. 그러나 동포 형제들의 도움도 절대적이었다. 전국 각지에서 의연금과 물품이 답지한 것은 물론 직접 관광단을 이끌고 우리 동네를 찾았다. 우방의 협조도 잊을 수 없다. 대지진은 한국 같은 이웃 나라와의 협조가 한 단계 발전하는 계기가 됐다.” 청두=진세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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