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아그라와 복분자주 맛있는 만남 어때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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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세계적 요리학교인 ‘르 꼬르동 블루’의 앙드레 쿠앵트로(59) 회장에게 한국은 각별하다. 15개국에 35개의 요리학교를 꾸려가고 있는 이 미식가 프랑스인에게 중요한 과제 중 하나는 한국 음식의 세계화다. 이미 2004년 한국 정부로부터 ‘김치 홍보대사’로 위촉 받아 활발한 활동을 펼쳐왔고, 그 다음으로 국제무대에 내놓을 한국 음식을 궁리 중이다. 아들 샤를 쿠앵트로(27)는 아예 2006년부터 서울에 상주하며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 르 꼬르동 블루의 총지배인을 맡고 있다. 한국 정부와 협의도 할 겸 사업 점검도 할 겸 최근 한국을 찾은 그를 숙명여대 르 꼬르동 블루 캠퍼스에서 만났다.

먼저 김치 다음엔 무엇을 구상 중인지 궁금했다. “아직 아이디어 단계”라는 전제로 말문을 연 그는 “한국의 전통주와 프랑스 요리, 또 한국 요리와 프랑스 와인의 결합”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고 소개했다. 세계 3대 진미 중 하나로 꼽히는 거위간 요리인 푸아그라 요리와 복분자주를 곁들여보면 어떨까 하는 식의 고민이다. 특히 이번엔 한국의 풍요로운 지역 음식과 지역별 전통주에 눈이 간다는 설명이다. “팔도음식부터 전통주에 이르기까지, 한국 음식문화와 역사는 다채롭기 그지없죠. 이런 문화를 십분 활용하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자리를 함께 한 아들 샤를도 한국 음식 이야기가 나오자 말을 그치지 않는다. 그는 “한국 전통음식과 전통주를 즐긴다”며 “복분자주나 막걸리, 안동소주와 같은 맛있는 술은 외국인들에게도 매력적일 것임에 분명하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호주에서 생활하던 중, 한국 친구들에게 소개받은 한국의 맛에 매료돼 한국행을 결심했다고 한다. 개고기도 직접 맛을 보며 한국의 맛 탐구에 열심이다. 부산 자갈치 시장 아줌마가 맛 보여준 고추장 소스(초고추장) 맛을 못 잊고, 떡볶이와 같은 길거리 음식들에도 끌리고 있다.

쿠앵트로 회장은 “프랑스에도 김치와 같은 발효음식이 많다”며 “프랑스 요리와 한국 전통주, 또 프랑스 와인과 한국 요리가 어울리는 교집합이 있을 것이고, 그 조합의 법칙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과거 김치 홍보에 한창 열중할 때 김치와 프랑스 요리를 접목한 요리법을 풍성히 담은 『한국 김치와 르 꼬르동 블루』라는 책을 출간한 적이 있다. 이번에는 음식 조합의 법칙을 담은 책을 준비 중이다. 아울러 “전세계 최대의 네트워크를 자랑하는 르 꼬르동 블루를 기반으로 각국에서 시연회를 여는 등의 홍보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고 계획을 밝혔다.

술과 음식의 어울림을 추구하는 건 쿠앵트로의 가족의 전통이다. 외가는 레미 마르탱 코냑을, 친가는 쿠앵트로 리큐르를 생산해왔다. 쿠앵트로 회장은 1984년 르 꼬르동 블루를 인수, 세계적 요리 명문학교로 키워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올해 초 레종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프랑스 정부가 민간인에게 수여하는 최고 훈장이다.

한국 르 꼬르동 블루 사업도 순항 중이다. 2006년엔 외식 사업 관련 MBA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출범했다. 올 하반기에는 와인과 음식의 어울림에 초점을 맞춘 프로그램을 내놓을 계획이다. 교육을 최우선 가치로 삼고 있지만 레스토랑 컨설팅을 비롯한 각종 사업도 활발하다.

그는 “현 한국 정부 역시 국제화에 매우 큰 관심을 갖고 있다는 점이 매우 고무적”이라며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고 강조했다. “김치에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결국 김치의 독특함에 매료됐다”는 경험도 덧붙였다.

“중요한 건 계속해서 노출시키는 겁니다. 세계 시장은 준비가 되어 있어요. 김치 및 한국 음식에 대한 인식이 높아져 가고 있는 걸 기회로 삼아야죠.”

그는 “김치나 한국 음식이 건강에 좋다는 식으로만 홍보되는 거 같아 안타깝다”며 한국 음식 자체의 숨은 매력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마늘을 줄이거나 덜 맵게 해볼까하는 고민은 하지 않는 게 좋아요. 있는 그대로의 한국 음식으로 승부를 봐야죠. 한국인도 아직 잘 모르는 한국의 맛과 멋을 찾아내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전수진 기자

◇르 꼬르동 블루(Le Cordon Bleu)=110여 년 전인 1895년 프랑스 파리에서 문을 연 요리학교다. 현재 15개 국에서 35개의 요리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연간 2만5000여 명의 수료생을 배출하고 있다. 외국어 표기법에 따르면 ‘르 코르동 블루’가 맞지만, 한국에서 요리학교를 열면서 ‘르 꼬르동 블루’란 상표명을 등록해 사용하고 있다. 프랑스어로 푸른 리본을 뜻하며, 1578년 프랑스 국왕 앙리3세가 만든 ‘성령 기사단’이 이 리본을 상징으로 사용했다. 이 기사단의 모임에선 항상 최고의 만찬이 제공돼 르 꼬르동 블루는 ‘훌륭한 요리사’를 가리키는 뜻으로 쓰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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