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산업화 논리'대신 '인간화 논리'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지난 1일자 중앙일보의 「지겨운 이념싸움」이라는 시론은 남한에는 보수주의만이 존재할 뿐이라고 전제한다.그리고 산업화세력과민주화세력은 함께 보수세력이므로 「지겨운 이념싸움」을 벌일 것이 아니라 협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그러나 이러 한 주장은 몇가지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첫째,유일하게 존재한다는 보수주의 이념의 실체다.이 시론은 산업화세력과 민주화세력 모두 좌파가 아니라는 의미에서 보수주의에 포함시키고 있다.그러나 도대체 무엇을 보수하겠다는 것인가.
군사문화를 보수하겠다는 것인가.추구할 가치를 보수 하고자 할 때 보수주의 자격이 있다.획득과정이야 어찌되었건 한번 획득한 기득권을 무조건 보수하려는 「수구주의」가 「보수주의」와 혼동되어서는 곤란하다.
둘째,산업화세력과 민주화세력의 범주다.이 시론은 산업화세력의주축이 군출신 정치인과 테크노크라트라고 한다.그러나 그들 대다수는 지난날 민주화에 역행하고 오늘날에는 산업화의 결과적 어부지리만을 노리는 이들이 아닌가.군사쿠데타,권력유 지를 위한 인권유린,권력형 부정부패는 결코 산업화와 연고가 없다.산업화는 묵묵히 일해왔던 직업관료들,기업인들과 근로자들,그리고 그들의 가족들,결국 국민 대다수의 희생과 노력의 결과다.
셋째,「지겨운 싸움」의 내용이다.오늘날에도 「싸움」이 있기는하나 그것은 결코 「이념싸움」이 아니다.지역분열에 기초해 정치적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하는 전근대적 지역패권싸움 그 자체일 뿐이다.수구적 지역패권주의에 껍데기만 남은 이념 이 교묘히 이용당하고 민주.개혁.통합.통일의 가치는 질식되고 있다는데 문제의 초점이 있다.
세계는 빠른 속도로 탈산업화하고 있다.구시대적 산업화 논리는이제 민주적 개혁을 통한 인간화 논리에 그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이 시대의 국가관리 능력은 사회 전반의 민주적.다원적 인간화 추진능력에 달려 있다.쿠데타세력이나 수구세력 을 비호한다는오해의 소지가 있는 논리는 삼가고 또 삼가야 할 것이다.
바야흐로 합리적.양심적 보수주의,개혁적 보수세력의 목소리가 절실히 요구되는 때다.
權奇洪 영남대교수.경제학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