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러 “미국의 독주 막자” 국경분쟁도 흔쾌히 종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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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중국과 러시아의 거리가 다시 크게 좁혀졌다. 해결하기 어려운 영토 문제에서 양측이 흔쾌히 합의를 도출했기 때문이다.

중국의 양제츠 외교부장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21일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중·러 동쪽 국경선 서술 협의서’에 서명했다. 그동안 양국 간 갈등 대상이었던 동쪽 지구 국경선에 대한 최초의 합의다. 이로써 4300㎞에 이르는 양국 국경선 전체를 잇는 굵은 선이 확정됐다.

양국은 40년 이상 국경 일부를 두고 분쟁을 벌여왔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1991년 5월 처음 접촉을 시작해 ‘중국-러시아 국경 동쪽 협의서’를 체결했다. 이후 합동으로 탐측한 후 2004년 러시아가 양국 간 분쟁 지역인 동쪽 끝 헤이샤쯔다오의 절반에 해당하는 174㎢를 중국에 반환키로 약속했다. 이듬해 동쪽 도서 지역 등 나머지 분쟁 지역에 대한 공통 탐사 작업에 착수해 지난달 끝냈다.

영토 확정은 매우 민감한 사안이다. 합의 자체가 매우 어렵다. 그럼에도 중·러가 빠른 속도로 ‘분쟁 지역 나눠 갖기’에 합의한 것은 유일 초강대국인 미국에 공동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공감대를 구축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양국이 2006년 ‘러시아에서의 중국의 해’, 2007년 ‘중국에서의 러시아 해’를 선언할 정도로 친밀한 관계를 맺는 한편 군사 합동훈련까지 펼치는 등 준 동맹적인 노력을 기울인 것도 이 때문이다. 양국 간 영토 합의가 단순히 관계 개선이란 의미에서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사회과학원 러시아 연구실의 루난취안(陸南泉) 주임(실장)은 “양국 간 영토 문제 합의는 중·러 관계의 전략적 협조, 중·러의 대외 관계에 미치는 영향이 작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두 나라의 신뢰가 완전히 회복한다면 중·인도, 중·미, 중·대만, 러·미 관계 역시 실질적으로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베이징의 외교 소식통은 “중국과 러시아의 윈-윈 전략은 영토 문제에 대해 탄력적인 선택을 한 대신 상대국과의 협력 공간을 넓히는 것이 국익에 더 큰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결과”라고 평가했다.

베이징=진세근 특파원

◇헤이샤쯔다오=중국과 러시아의 동부 국경 지역인 푸위안(撫遠)현 지역의 섬. 면적은 홍콩의 약 3분의 1인 327㎢. 북위 48도17분, 동경 134도24분에 있다. 우수리강이 헤이룽장(黑龍江)성과 만나는 지점과 가깝다. 중국에서 제일 먼저 태양이 뜨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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