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Style] 문학을 듣는다 Cool~ 하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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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요즘 젊은이들은 책을 ‘듣는다’. 이미지와 텍스트를 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시대, 사운드의 청각 효과까지 누려야 비로소 온전히 소비했다는 느낌을 받는 걸까. 이렇게 듣는 독자가 점점 늘면서 저자가 자신의 작품을 읽어주는 낭독회가 아연 활기를 띠고 있다. 낭송 음반과 함께 내놓은 시집 또한 화제가 되고, 소설과 음악의 결합을 꿈꾸는 ‘북OST’와 오디오북이 새롭게 인기를 끄는 형국이다.

# 넌 아직도 읽니? 난 듣는다!

대학원생 최지연(25)씨는 오디오북을 즐겨 듣는다. 그녀의 MP3엔 음악이 아닌 소설이 가득 들어있다. “방 안에서 뒹굴며 소설책을 읽는 것도 좋지만, 오디오북으로 듣는 건 또 다른 매력이죠”라고 말한다. 요즘 ‘듣고 있는’ 소설은 백영옥의 ‘스타일’. “혼자 버스 타고 가면서 듣다가 웃음이 나와서 혼났어요”라며 소설듣기를 예찬한다.

‘소설듣기’ 매니어들이 모인 오디오북 사이트 오디언(www.audien.com)의 댓글에는 소설을 듣고 난 소감들로 가득하다. ‘책은 지루해서 잘 안 읽히는데 이렇게 들으니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 ‘뭔가 묘하게 중독성이 강하다’는 의견이 주를 이룬다. 실제로 이 사이트의 회원 수는 최근 반 년 사이에 10만 명 늘어 회원 수가 50만 명이 넘는다.

작가가 작품을 읽는 낭독회는 이 같은 듣기 열풍을 반영하는 행사다. 지난 11일 저녁 서울 강남구 교보문고에서 대산문화재단이 공동주최한 ‘정이현 작가와 함께하는 낭독회’ 현장. 이벤트홀은 70여 명의 독자로 금세 가득 찼다.

낭독회 참석이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지난 11일 서울 강남구 교보문고에서 열린 ‘정이현 작가와 함께하는 달콤한 낭독회’ 현장에는 정이현 작가, 강유정 문학평론가, 김혜주 성우의 얘기를 듣기 위해 젊은 여성 독자들이 몰렸다. [대산문화재단 제공]

“서른두 살, 가진 것도 없고 이룬 것도 없다. 나를 죽도록 사랑하는 사람도 없고, 내가 죽도록 사랑하는 사람도 없다. 우울한 자유일까, 자유로운 우울일까. 나,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무엇이든?” <소설 ‘달콤한 나의 도시’ 중>

낭랑한 목소리가 공간을 가득 채우고 달콤한 음악이 흐른다. 맨 앞줄에 앉은 한 여성 독자의 눈에는 눈물이 몽글몽글 솟았다. 손에 턱을 괴고 눈을 감은 채 소리에 몰입한 이도 있다. 에어컨이 휭휭 돌아가는데도 달아오른 열기는 가라앉지 않았다.

낭독회가 끝나자 질문이 쏟아졌다. “30대 노처녀 이야기가 폭넓게 사랑받는 이유가 뭘까요?”라고 묻는 여대생 나하나(25)씨의 질문에 작가가 발끈한다. “은수(소설 ‘달콤한 나의 도시’ 주인공) 노처녀 아니에요!” 웃음이 터졌다. 웬만한 작가의 낭독회는 시간을 내 꼭 가본다는 나씨는 “작가가 직접 읽어주는 작품을 들으면 작품이 아주 새롭게 들린다”고 낭독회의 묘미를 털어놓았다.

일주일에 한 번씩 시낭송 동영상을 e-메일로 보내주는 프로그램인 ‘문학집배원’의 인기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담당자 정경아(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나눔)씨는 “2006년 처음 시작할 때 3만여 명에 불과했던 회원이 7월 현재 32만 명으로 늘었다”며 “매월 300여 명씩 가입했는데 올 들어 두 배 이상 늘 정도”라고 말했다. 지난 1년간 문학집배원이었던 안도현 시인이 6월 출간한 낭송시집(CD 포함)은 그 즉시 베스트셀러 10위권 에 진입했다.

# 작품 속으로 들어간 독자

작가 입장에서 보면 독자와 만나는 채널이 훨씬 다양해진 셈이다. 밴드 ‘3호선버터플라이’의 멤버이기도 한 성기완 시인은 7월 초 ‘당신의 텍스트’란 시집을 발간하며 독특한 시도를 했다. ‘당신의 노래’라는 음반과 함께 내놓은 것. 시인은 “예쁜 목소리로 읽는다고 해서 가슴으로 다가오는 건 아닌데 우리의 낭송 문화는 천편일률적”이라며 “낭송은 실험의 대상”이라고 단언한다.

낭독회도 마찬가지다. 독자들과 직접적으로 소통함으로써 독자와 작가의 거리는 많이 줄어들고 있다. 정이현 작가 낭독회에 참가한 회사원 김세운(31)씨는 “작가가 도대체 어떤 분인지 꼭 보고 싶었는데 직접 보니 참 다정하다”며 이번 낭독회에 참석한 이유를 밝혔다.

이러한 현상들에 대해 강유정 문학평론가는 “방 안의 작가와 독자가 밖으로 걸어 나와 만난 것”이라고 표현한다. 과거에는 독자와 거리를 두고, 신비로움을 유지해야 ‘작가다움’을 유지할 수 있었다면 이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독자와 소통하며 피드백을 받고 싶어 하는 작가들의 욕망과 작품에 관여하고 작가를 자신의 지인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독자들의 욕망이 일치하기 시작한 것이다. 방 안에서 걸어 나온 작가와 작품 속으로 들어가려는 독자들의 만남은 이제 시작이다.

임주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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