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나들이 100배 즐기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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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의 감수성·상상력을 위해 예술교육이 중요하다는 데 많은 학부모들이 공감한다. 많은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미술관은 가까운 예술 교육의 현장이다. 그러나 미술관 나들이는 큰 맘 먹지 않고선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자녀 미술 교육에 대한 조언을 듣고자 도서관옆신호등(www.kidstd.com)의 대표이자 『나는야 꼬마 큐레이터』(미진사)의 저자 이현(40)씨와 그의 아들 유시완(8)군의 미술관 방문을 따라가봤다.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은 생각보다 가까웠다. 미술관 주변의 야외 조각품부터 눈에 들어온다. 이씨는 “미술관 안으로 곧장 들어가지만 말고, 주변 풍경이나 건축물 등도 보면서 소풍 온 듯한 느낌으로 둘러보고 즐기라”고 조언했다.
  전시장 입구에서는 미술관 안내 책자를 먼저 챙긴다. 전시관 구조와 전시 구성을 알 수 있는 지도를 보면서 오늘 어떤 관을 둘러볼 건지 정한다. 한 번에 미술관 전체를 보려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엄마가 원하는 전시관 한 군데와 아이가 보고 싶어 하는 곳 한 군데 정도면 적당하다.
  이씨는 “아이들이 자유롭게 상상력을 펼치는 데는 현대미술이 좋다”고 말했다. 정형화되지 않고 일상에 많이 적용되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뭘로 만들었을까?” “어디서 본 것 같지?” 하는 대화로 연상을 유도해 볼 수 있다. 물론 답을 추궁하듯 질문하거나 엄마가 원하는 답만 고집해선 안 된다.

그림보며 ‘찾기 놀이’
  표를 끊고 들어가자 백남준의 <다다익선>이 나타난다. 모니터가 층층이 쌓여있고 각 화면마다 다양한 이미지가 지나간다.
  “와 텔레비전이 엄청 많네.”(이) “그림이 빨리 빨리 지나가요.”(유) “이중에서 같은 그림이 어디어디 있나 한번 찾아볼까?”(이) “어 여기! 저기도! 하트 그림이다!”(유) 이씨가 미술관에서 아이와 자주하는 ‘찾기 놀이’다. 그림에서 색깔 찾기, 특정 사물 찾기 등으로 작품을 한 번 더 들여다보는 기회를 만들어 준다.
  안쪽에는 장 팅겔리의 <회귀의 벽>, 세자르 발다치니의 <빌르타뇌즈의 여인상> 등 조각과 회화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유군은 조각 작품의 앞·뒤·옆을 돌아가며 보고 떠오르는 대로 말을 쏟아낸다. “이건 뭐 같아, 시완아?”(이) “사람 뼈 같아요. 날개 같기도 해.” “이건 여인이 아니라 아줌마 같은데. 엄마랑 닮았다.(키득거림)”(유) 유군은 니키드 상팔의 <검은 나나>를 보더니 자세를 똑같이 따라해 보기도 한다. 순서를 건너뛰고 눈에 띄는 작품을 향해 가로질러 가기도 한다. 마치 놀이터에 와 있는 듯 자유롭다.
  이씨는 “여유로운 관람을 위해 상설전시관을 자주 찾고, 특별전시를 가더라도 비가 오는 날이나 전시기간이 끝날 무렵에 가는 편”이라고 귀띔했다.
  다른 전시장으로 들어서니 또 다른 분위기의 작품들이 기다리고 있다. 바네사 비크로프트의 <빈 미술관>, 신디 셔먼의 <무제 163>은 아이와 함께 감상하기에는 다소 기괴하기도 하고, 여성의 나체가 민망할 법도 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씨는 말한다. “있는 그대로 접하게 하세요. 선정적이거나 폭력적인 것도 작품을 통해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면 괜한 호기심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런 작품을 계기로 아이의 느낌을 솔직하게 듣고 바람직한 태도를 갖도록 유도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어요.”
  어린이미술관에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어린이 미술프로그램 참가자들이 직접 그리고 만든 작품들이 전시돼 있었다. 또래의 작품에 친근감을 느끼는 듯하다. 상설전시관과 어린이미술관을 모두 둘러보는 동안에도 유군은 힘들다는 투정 한번 부리지 않는다. 어려서부터 이씨와 함께 미술관 나들이를 자주 다닌 덕이다.
  이씨는 “만약 관람 중 아이가 싫증을 내거나 힘들어하면 그냥 한 쪽에 철퍼덕 앉아 쉬라”고 조언했다. 간식을 먹으며 이때까지 본 작품들에 대해 느낌도 나누고, 안내 책자를 보면서 다음에 뭘 볼지 이야기해 본다.

미리 작품 공부해 갈 필요 없어
  전시장을 모두 둘러본 뒤에는 뮤지엄 숍에 꼭 들른다. 전시된 작품이 담긴 엽서나 수첩 같은 소품 중 딱 한 가지만 아이가 고르게 한다. 집에 돌아가서도 작품의 여운을 간직할 수 있어 좋다. 유군은 “뚱땡이 아줌마 그림이다”며 전시장에서 봤던 작품의 엽서를 반가워했다.
  이씨는 “미술관에 간다고 해서 엄마가 공부해 갈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 엄마가 부담을 느끼면 아이도 부담을 느낀다는 것. 홈페이지를 보면서 대략 어떤 곳에 간다는 정도만 이야기한다. 공부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방문할 수 있어야 자주 찾게 된다.
  미술관에 가서도 작품 옆에 붙어 있는 설명판을 되도록 보지 말라는 게 이씨의 조언. 일단 아이와 함께 자유롭게 생각을 펼치며 관람하는 것이 좋다. 그런 뒤에 시간이 된다면 작품 해설을 듣거나 설명판을 보면서 다시 한번 둘러본다.
  이씨는 “미술관에서는 무엇보다도 아이의 생각과 느낌을 많이 들어주는 것이 좋다”며 “그러다보면 아이에 대해 새롭게 알아가는 기회가 된다”고 말했다.

프리미엄 최은혜 기자
사진= 프리미엄 황정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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