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한국인'과 '한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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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지난 2월29일자 중앙일보 보도에 의하면 미국내에서 사업하고있는 1백50여개의 한국및 교포기업들이 92년 선거에서 김창준(金昌準)후보에게 불법적인 방법으로 선거자금을 제공한 혐의로 조사받고 있다고 한다.그리고 이미 한국의 대표적 인 몇몇 기업의 미국지사들은 혐의내용을 사실로 인정했다고 한다.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기업들이 선거자금법을 어긴 것으로 판명될는지 알 수 없지만 조사 결과에 따라서는 그 파장이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우선 많은 한국계 기업인들이 법률의중요성을 의식하지 못했던 것 같다.특히 미국이 얼마큼 법을 중요시하는 사회인가 하는 점을 이해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문제가 있다.법의식이 부족한 것은 재미 기업인들만이 아니라 한국사회에서 잔뼈가 굵은 우리들 모두의 문제라는 점이다.가령 한국 정치인들 가운데 재미교포들로 구성된 후원회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 는데 후원회에 선거자금을 제공한 교포들 중에는 미국시민권을 가진 사람들도있을 수 있다.그렇다면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한국내에 거주하지 않는 외국시민으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아도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지생각해봐야 한다.
좀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보면 코리안-아메리칸이 미국의회에 출마했을 때 한국계 기업들이 돈을 모아 주는 심리상태나 재미교포들이 한국정치인의 후원회를 만드는 심리상태는 마찬가지라고 할수 있다.이런 행태의 밑바닥에는 국적을 법에 따 라 인식하지 않고 피에 따라 인식하는 사고방식이 깔려있다.
아무리 김창준후보가 한국에서 태어났고 한국인의 자손이라고 하더라도 그는 이미 엄연히 미국인이다.미국하원의원으로 당선된 그는 미국의 국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김창준의원은 대한민국의 대표가 아니다.김창준의원이 미국하원의원으로 당선된 데 대해 한국정부와 국민에게 감사한다는 말을 한다면 뭔가 크게 잘못된 것이다.코리안-아메리칸의 한 사람으로 미국의원이 된 것을 기뻐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는 있어도 한국정부와 국민에게 당선될 수 있도록 도와준데 대해 감사한다는 것 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김창준의원을 계속 「한국인」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많은 것 같다.어떤 사람들은 그가 미 의회에서 한국을 대표하는것처럼 착각하는 것 같다.물론 그가 코리안-아메리칸이기 때문에한국국민과 관련된 분야에서 특별한 문화적 이해와 깊은 애정을 가지고 활동할 수 있는 입장에 있는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그런경우에도 그는 어디까지나 미국의 의원으로서 미국의 국가이익에 충성해야 하며,현실적으로 이런 면에서 동료 미국의원들과 유권자들로부터 의심받을 수 있는 어떤 행동도 자제해야 한다.
필자가 워싱턴에 근무하고 있을 때 아시아계 미국상원의원으로 오랫동안 활동해온 노련한 정치인 한 사람은 동료의원들과 언론의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 그의 조상의 뿌리가 있는 아시아 나라의대사와는 만나지도 않고 대사관 리셉션에는 단 두번 참석했으며 모국을 방문했을 때도 일반여행자로서 정부지도자들에게는 가까이 가지도 않았다고 귓속말로 말해 주었던 것을 기억한다.
한국내에 살고 있는 우리들로서는 「한국인」과 「한인」을 구분하는 것부터 배워야 한다.「한국인」은 대한민국의 국적을 가진 시민을 뜻한다면 「한인」은 법적인 국적은 다르지만 넓은 의미의「한민족」에 속한다는 뜻을 갖고 있다.우리는 그 동안 너무 무차별적으로 「한국인」「한국사람」이라는 표현을 사용해왔다.그러나「한국인」은 문자 그대로 「한국」이라는 국가를 전제로 하는 개념인 반면 「한인」은 문화적 의미의 민족개념을 전제로 하고 있다. 끝으로 우리가 「한국인」과 「한인」을 구분하지 않고 「한인」이면 모두 「한국인」으로 취급한다면 미국같은 사회에서는 「한인계 미국인」들을 미국인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있다.미국을 조국으로 생각하지 않고 미국보다 한국에 더욱 충성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의심을 받게 된다.바로 이 점이 김창준의원에게 선거자금을 제공한 한인계 기업들의 행동이 남긴 문제점이다.미국인들이보았을 때 그렇게 많은 한인 기업인들이 모두 한인계 후보에게 선거자금을 몰아주었다는 사실은 불법행위 가 아니었다고 하더라도한인계 미국인들의 미국인됨을 의심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염려된다.
金瓊元 사회과학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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