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영역이 권력갈등 핵심 무대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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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탈규제 정책, 그리고 어정쩡한 보호정책을 해소하는 작업이 문화의 전반적인 영역에서 개방의 기회를 넓혔다.”

한림대 유재천 특임교수가 내린 진단이다. 유 교수는 18일 재단법인 굿 소사이어티(공동대표 김인섭 변호사, 서울대 정진홍 교수)가 건국 60주년 기념으로 진행 중인 제7차 공개토론회 ‘건국 60주년,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의 발제자로 나서 이같이 주장했다. 그는 ‘인쇄문화에서 영상문화로’라는 제목의 발제문에서 한국 사회의 문화 흐름을 이렇게 규정했다.

유 교수는 서두에서 ‘미국 대중문화에 대한 우리의 이중적 관점’을 지적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그는 “미국에 대한 동경이 정치경제적 측면에서는 부정적 관점 없이 존재했지만 문화적 측면에선 긍정과 부정을 함께 내포했다”며 “미군과 연애하는 한국 여성에 대한 비하 정서 등이 이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전통문화 육성 정책’이 강력하게 추진되면서 ‘대중문화 vs 전통문화’의 대립구도가 형성됐다는 설명이었다.

그는 “문화를 대중문화와 전통문화로 나누는 이분법적 사고를 경계해야 한다”며 “이분법적으로 나눠선 대중문화와 전통문화가 융합하는 사회적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특히 대중문화에 대한 맹목적인 비판을 삼가야 한다고도 당부했다. 유 교수는 “1990년대 정치권력과의 직접적 대립에서 벗어난 뒤 대중문화는 여러 방향으로 다양성과 역동성을 보여줬다”고 평가한 뒤 “진지한 비판의 결여, 청소년의 입맛에만 맞추는 행태는 비판받아야 하지만 대중문화 전반에 대해 부정적 판단을 하는 건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토론에 나선 서울대 전상인 교수는 “문화권력, 문화혁명이란 말이 공공연해진 것이 최근 우리나라의 사정”이라며 “문화영역이 권력갈등의 핵심 무대가 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문화를 해석할 때는 우리 사회에서 문화의 위상과 역할이 과거에 비해 확대됐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화평론가 김병익씨는 “서구 문화가 곧 미국 문화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유럽 문화는 개화기 이후 식자층에 의해 수입돼 고급문화로 자리매김했다”며 “이런 경향이 서구의 고상한 고급예술과, 아메리카의 통속적인 대중예술이란 이분법으로 나뉘어 한국 사회에 은연중 고정관념으로 작용한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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