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책 읽기] 소설로 써내려간 노동자들 ‘분노의 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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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우리 공장은 소설이다
『Notre usine est un roman』

실뱅 로시뇰 지음
라 데쿠베르트(La Decouverte) 출판사
414쪽, 21유로, 2008년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제약회사, 사노피 아벤티스가 1998년 파리 근교의 로맹빌에 있는 공장을 폐쇄하려 하자 그곳 직원들은 살아남기 위해 거센 투쟁을 벌였다. 6년 간 지루한 투쟁을 벌였지만 로맹빌 공장은 결국 2004년 문을 닫았고, 660명의 노동자가 하루 아침에 일자리를 잃었다. 450여 명은 다른 공장으로 전직됐다.

“적자에 허덕이는 공장이 아니었다. 더구나 인간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선 반드시 필요한 공장이었다. 그런 공장을 폐쇄한다는 부당한 소문을 들었을 때 우리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투쟁은 분노로 시작됐다. 보스턴 컨설팅 그룹은 로맹빌 공장을 폐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생산성이 떨어지기 때문은 아니었다.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세계화 전략의 일환이었다. 우리는 뒤통수를 얻어 맞은 기분이었다.”

거의 40년 간 그곳에 근무했던 노동자와 관리자, 기술자와 연구원은 그들의 고통과 투쟁을 세상에 알리기로 결정하고 ‘레지스탕스 위니베르셀’이란 모임을 결성했다. 그들은 오랜 논의와 숙고 끝에 일종의 증언록을 남기기로 결정하고, 노동조합 투사로서 활동한 경력을 지닌 젊은 작가, 실뱅 로시뇰에게 그 역할을 맡겼다.

로시뇰은 그들의 부탁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1년 간의 조사와 60여 회의 인터뷰 끝에 그는 그들의 얘기를 소설 형식으로 써내려 갔다. 대기업의 얘기가 종업원의 관점에서 쓰여진 적은 없었다. 더구나 소설의 형식을 빌어 쓰여진 적은 더더욱 없었다.

“나딘, 일이 손에 안 잡혀.” “몸이 안 좋은 거야?” “토할 것 같아.” “그럼 보네 반장에게 교대해달라고 해.” “괜찮아. 견뎌볼 거야.”

소설은 1967년 9월 18일 오전 8시 30분, 포장부의 안타까운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그날 첫 출근을 시작한 10명의 인물을 추적하는 식으로 얘기가 전개된다. 개인과 조직, 정치와 사회에 관련된 얘기가 교묘하게 연결되면서 노동의 즐거움과 슬픔이 간결한 언어로 쓰여졌다. 68년 5월 맞이한 위대한 시대를 향한 꿈과, 81년 사회당의 프랑수아 미테랑이 대통령에 당선된 때의 희망이 그려지기도 하지만, 구조조정에 대한 두려움과 분노도 빼놓지 않았다. 산업자본주의에서 세계화 경제로 넘어가는 시절을 경험한 세대의 애환이 고스란히 읽혀진다.

또한 프랑스에서 제약 산업이 어떻게 변해갔는지도 실감나게 전해준다. 혁신적인 과학 장비가 도입되고, 실험실에서 동물 실험이 거듭되면서 제약산업은 화학에서 생물학으로 변해갔다. 그러나 마침내 공장을 폐쇄할 날은 하루하루 다가왔다. 실험실부터 비워졌고, 기초적인 장비들은 그 자리에서 파손됐다. 다른 공장에 옮기는 운송 비용보다 덜 든다는 이유로 ….

새벽 1시경, 그는 코를 파면서 말했다. “젊은이, 밤에 일하니까 힘들지?” “예, 아저씨는 오늘도 밤 근무이신가요?” “아저씨라니, 듣기 거북하군. 그냥 말을 놓게.” “선배는 오늘도 밤 근무인가요?” “그래.” “잠은 좀 잤고요?” “아니.” “나라면 못 견딜 것 같은데요.” “하지만 자네도 곧 그렇게 될 거야. 몸 시계를 그렇게 맞추면 되거든.”

이렇게 일하던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그들의 공장이 사라지면서 한 권의 소설이 탄생했다. 자본주의와 노동자의 사회적 조건을 어떤 이론서보다 설득력 있고 감동적으로 알려주는 책이다.  

강주헌 <번역가>

실뱅 로시뇰(Sylvain Rossignol)

젊은 무명작가. 두 번의 실업을 직접 경험한 노동조합 투사이며, 핵 없는 세상을 지향하는 ‘핵 탈출 53’이란 시민단체의 회원이기도 하다. 중단편 소설 공모전에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 친구』등으로 여러 차례 수상했으며, 『친구들의 이야기』가 곧 출간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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