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무명설움 고려증권 이수동 96배구슈퍼리그서 훨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7면

얼굴을 내밀어도 그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96배구슈퍼리그가 출범하기 이전까지 그는 다만 무명에 지나지 않았다.그러나슈퍼리그가 대단원의 막을 내린 지금 그는 이름만 들어도 「가슴속에 높깊은 물결을 일으키는 사나이」로 남아 있 다.
이수동(25.190㎝.고려증권)-.
하얗게 센 머리,고운 피부,그래서 순하게만 보이는 것은 첫 인상일 뿐 막상 코트에 서면 그는 몸서리칠 정도로 호모 벨리쿠스(호전적 동물)요, 호모 아바루스(탐욕적 동물)였다.
국내 남자배구의 최정상을 가리는 28일의 챔피언결정 4차전.
17-16으로 앞선 5세트에서 뿜어나온 그의 결정타는 고려증권3년 한의 마감포만은 아니었다.
그의 낯뜨거운 배구이력을 날려보낸 마지막 의식이었다.
그의 배구입문은 대구 수성초등 4학년때.딸부잣집 외동아들(이기호-장영순씨의 1남5녀중 둘째)로 몽땅사랑을 받으면서도 배구부원들에게 나눠주는 빵과 콜라가 탐났던 것.
실력이 붙을 리 없었다.경북사대부중.고를 다닐 때도 배구보다당구도사(당시 2백50).
결국 그는 동기생에 끼워팔려 홍익대에 입학(90년3월)하고 1학년말 탈퇴권고까지 받는 수모를 겪었다.
그 수모가 바로 오늘의 이수동을 키운 약이었다.
그때부터 이를 악문 그는 겨우 2천만원을 받고 고려증권에 입단(93년11월)한 뒤 과거의 허송세월을 몇곱 훈련으로 되갚으며 투지를 불태워온 지 2년여.
자신의 「한방」에 끝난 슈퍼리그무대를 배경으로 어머니(51)를 얼싸안고 흘린 그의 눈물은 15년무명을 깨고 스타로 다시 태어나는 인간승리 드라마의 클라이맥스이기도 했다.
정태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