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에서>선거철의 保守다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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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미국 공화당후보 지명전은 뷰캐넌 돌풍으로 장래를 예측키 어려운 지경에 빠져들고 있다.「튀는 후보」뷰캐넌이 클린턴을 이길 것으로 예측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그러나 이번 돌풍은 94년 중간선거에서 남부지역 보수층 지지에 힘입어 상.하 양원을 석권한 공화당이 미국내 보수주의를 정착시킬 수 있을지를 가늠하는 잣대가 된다.
미국내 보수주의자들의 범주는 넓다.이민정책.세제(稅制).무역및 낙태(落胎)문제 등과 관련,입장이 사뭇 달라 한 집단으로 규정하기 어렵다.그러나 모두 자유시장경제 원칙과 「작은 정부」를 신봉하고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뷰캐넌후보처 럼 「미국 제일주의」를 앞세워 배타적(排他的) 무역정책을 옹호하는 목소리가위력을 발휘하는 것도 무시못할 현실이다.대체로 보수주의를 표방하는 공화당이 클린턴과 한판승부를 벌이는데 적지않은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예상하는 이유도 공화당 내 입장통일의 한계에서 비롯된다. 한국에서도 4월 총선을 앞두고 각당이 보수성향 유권자들의 표몰이에 진력하고 있다.한국 유권자들이 언제 정당의 정강(政綱).정책을 면밀히 검토하고 투표장에 나선 적이 있었던가.
하지만 이번만큼은 각 정당이 유권자들의 성향에 신경쓰는 듯하니각기 한표의 의미를 새겨봄직하다.
각 당이 표명하는 「시류(時流)에 따른」정책들을 살펴보면 한국의 정당은 보수일색이다.적어도 미국식 기준에 의하면 그렇다.
집권당 총재인 대통령이 작은 정부를 옹호한 적이 있으며,규제완화에 반대하는 정당은 없는 듯하니 모두가 기본적으 로 보수정당이다. 그런데 한국민들이 이해하는 보수주의는 우선 기득권층의 자기보호,북한의 위협속에 반공(反共)과 통하는 우파(右派)입장을 지칭하는 듯하다.얼마전 미 예비선거에서 뷰캐넌후보가 선전(善戰)하자 한국의 모 야당대표가 득의만면했다고 한다.한 국식 보수주의의 단면을 보는 일화다.보호무역을 강조하는 후보의 대(對)한국정책이 어떠할지에 생각이 미치지 못하고 기득권을 누리며안주하려는 자세라고밖에 달리 해석할 길이 없다.
92년과 94년 미국선거가 기득권층과 제도권에 대한 유권자들의 반란(叛亂)성격이 강했다면 올해말 선거는 보수주의의 회귀(回歸)와 반기득권 추세 사이에서 결판날 조짐이다.
무정형(無定型)의 보수진영에 호소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막연히생각하는 철학없는 정치인들로부터 한국의 유권자가 기대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선거에 임하는 각 정당은 서로간에 정책대결을 벌이기 부담스럽거든 경쟁하듯 앞세우는「보수」의 뜻 이라도 한번쯤생각해주길 바란다.
길정우 본사 在美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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