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손진책 연출 '線의 저쪽'日서 호평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0면

12일 일본 도쿄의 신국립극장 소극장에서 연극 '선의 저쪽(The Other Side)'이 초연됐다.

중남미 문학의 유명 작가인 아리엘 도르프만이 희곡을, 극단'미추' 대표인 손진책씨가 연출을 맡았다. 배우와 스태프는 모두 일본인. 구리야마 다미야(栗山民也.50) 신국립극장 예술감독은 "예전에 손감독 작품을 보고 지적인 해석과 강렬한 힘에 반했다"며 "분단 국가 출신이라 누구보다 단절의 아픔을 잘 알 것으로 판단해 연출을 맡겼다"고 초청 배경을 설명했다.

신국립극장은 매년 해외 유명 연출가와 극작가를 초청, 작품을 맡기고 있다. 국내 연출가가 초청되긴 이번이 처음이다.

400석 남짓한 소극장은 관객들로 꽉 찼다. 이라크의 일본인 인질 사건으로 인해 전쟁을 다룬 '선의 저쪽'에 대한 관심이 더 커진 듯했다. 그리 넓지 않은 무대에 등장인물은 딱 세 명. 그러나 작품에는 경계선과 단절, 갈라진 사랑의 아픔, 전쟁의 상처 등이 흠뻑 녹아있었다.

'콘스탄자'와 '토미스'란 가상의 두 나라는 전쟁 중이다. 20년째 아들을 기다리는 부인 러바나와 "이젠 우리의 인생을 살자"며 떠나고 싶어 하는 남편 아톰, 그리고 어린 시절을 기억하지 못하는 군인이 등장한다. 오래 지속된 전쟁 속에서 군인들의 죽음은 밋밋한 일상사로 그려진다. 그런데 노부부의 아들일지도 모르는 군인의 죽음을 계기로 전쟁의 참혹성이 현실로 다가온다. 관객은 전쟁 속의 모든 죽음이 하나씩의 '특별한 사건'이자 '지극히 구체적인 슬픔'임을 깨닫게 된다. 마지막에 무대의 벽이 무너지면서 눈에 확 들어오는 5000여개의 묘지가 강한 여운을 남기면서 작품이 끝난다.

한국의 김혜자나 손숙 정도의 위상인 여배우 기시타 교코(岸田今日子.73)의 내면 연기는 현지 평론가들에게서 호평을 받았다. 조명.미술.무대장치도 일본 최고의 스태프가 맡았다. 다만 양식적인 연극을 오랫동안 연기해 온 시나가와 도루(品川澈.68.아톰역)의 다소 뻣뻣한 움직임과 웅얼거리는 대사는 아쉬웠다.

극장에서 만난 평론가 오자사 요시오(오사카 예술대학) 교수는 "아주 인상적이었다"며 "작품 설정이 현실과 잘 맞아떨어진다"고 칭찬했다. 또 평론가 이시자와 슈지(전 베세토 연극축제 사무총장)는 "세계적인 보편성을 끌어낸 연출 방식이 돋보인다"고 평했다. 작가 아리엘 도르프만도 작품을 감상한 뒤 "내 심장에 너무도 가까이 다가온 연출이었다"고 말했다.

손진책 연출가는 "연출가의 지시만 기다리던 일본 배우들에게 '스스로 느낄 때만 연기를 하라'며 자율성을 부여하고자 했다"며 "연출가의 주문과 배우들이 하는 대사의 어감 등이 모두 통역을 거쳐야 했기에 아쉬운 점이 있다"고 말했다.

'선의 저쪽'은 오는 9월 영국의 유명 연출가인 피터 홀에 의해 런던에서 공연된다. 국내에선 내년께 무대에 올릴 예정이다.

도쿄=백성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