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못나고 못살고 못생긴 조선을 수집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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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가 조선식민지배의 한 수단으로 벌였던 민속조사에서 강제로 판을 벌인 굿 현장은 무당이나 구경꾼이나 모두 떨떠름해 보인다.

▶ 지배자(上)와 피지배자의 초상. 일본인 가족은 윤기가 자르르하고 조선인 가족은 궁기가 흐른다.

때는 일본 제국이 대한 제국을 지배하고 있던 1930년대. 강원도 고성에서 굿 한판이 벌어졌다. 평소 같으면 전래 민속이라고 해 꽹과리 소리 하나 못 내게 하던 일본 경찰이 와서 단장 짚고 지켜보는 꼴이 심상치 않다. 징을 두드리는 사내는 시무룩하고 뒷전에 선 망건 쓴 노인은 울상이다. 굿 구경 나선 이들은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 같으니 무당은 굿을 제대로 놀지 못하고 엉거주춤이다.

참 이상한 사진이다. 서울 신림동 서울대박물관(관장 김영나) 현대미술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그들의 시선으로 본 근대'전에 나온 이 사진 한 점에는 보이지 않는 이야기가 숨어 있다. 눈썰미 빠른 이들은 벌써 몇가지를 읽어낸다. 남이 시켜서 마지 못해 벌인 판이라는 것, 경찰이 왔으니 일제가 감시하는 중이라는 것, 남루한 옷차림의 조선인과 중절모를 쓴 양복쟁이가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위치를 절로 드러낸다는 것 등등 흑백 화면에 숨은 속내는 일본강점기의 슬픈 역사를 들려준다.

서울대박물관이 경성제국대학 시절부터 소장품으로 내려오던 1300여점의 유리건판(초창기 사진의 한 형태로 유리판 위에 사진용 감광유제를 도포해 만든 것) 가운데 고른 85점의 사진은 다 이렇게 시대의 아픔을 담고 있다. 전시 제목에 달린 '그들의 시선'은 바로 일제와 그들의 앞잡이로 나선 일본 민속학자들 눈길을 말한다. 민속 조사는 조선총독부가 식민지인 조선 땅을 더 잘 지배하기 위해 벌인 여러 가지 사업 가운데 하나였다. 서민층을 잘 부리기 위한 손쉬운 방법으로 민속을 꼼꼼하게 파헤쳤고 그 자료로 남긴 것이 이 사진들이다.

전시장은 크게 '일상의 풍경' '노동과 휴식' '그들과 우리' '시간의 흔적' '만주-또 다른 타자'의 다섯 덩어리로 이뤄졌다. 경성제대 교수였던 민속학자 아키바 다카시(秋葉隆)와 아카마쓰 지조(赤松智城)는 조선총독부의 지원으로 조선과 만주 전역에 걸쳐 다양한 조사를 벌였고, 그 과정에서 왜곡된 시선을 증거하는 것이 또한 사진이었다는 사실은 역설적이다.

80여점의 사진은 처음부터 끝까지 못나고 못 살고 못생긴 조선인과 조선 풍광을 담고 있다. 촬영자는 이미 부정적 시각의 눈을 카메라에 대고 있다. 근대식 양옥이나 기와집이 멀쩡하게 서 있는데도 다 쓰러져가는 초가지붕만 잔뜩 잡은 서울 부근 사진, 꾀죄죄한 옷차림의 사내들을 클로즈업한 개성 부근 사진 등 남루하고 낙후한 조선의 이미지를 강조하는 사진들로 전시장은 우중충하다.

사진 속 등장인물들이 하나같이 굳은 표정인 건 당연한 일이다. 웃는 조선인 얼굴은 없다. 적의 볼모가 된 모델들은 약한 나라에서 태어난 슬픔으로 처연하다. 당당한 몸집에 기름진 얼굴을 한 일본인 가족사진 옆에 옷차림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어색하게 늘어 앉은 조선인 가족사진은 100년도 채 안 된 한국 근대사의 아픔을 응축하고 있다.

이번 전시를 준비한 서울대박물관 선일 연구원은 "사진이라는 시각적 객관성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조선무속 연구는 그 자체가 하나의 권력이 돼 조선의 식민 지배를 위한 도구가 되었으며 인류학 같은 근대학문의 이름으로 객관화돼 세계로 퍼져 나갔고, 결국 세계가 조선을 바라보는 시각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조선은 미개했으며, 발전된 일본에 의해 하루 빨리 문명화하는 것이 급한 상황이란 객관적 자료로써 사진은 그 자체로 식민 지배의 일부가 되었던 것이다. 사진은 때로 무섭다. 6월 12일까지. 02-880-5333.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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