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눈>독도와 김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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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으로 온나라가 떠들썩하던 지난22일 오후.위성으로 서울에서도 수신되는 일본공영 NHK 제2TV는 『티타임 예능관-콘서트특집』이란 프로에서 한시간이 넘는 초대형 「김연자(金蓮子)쇼」를 방영했다.
일본에서 선풍적 인기를 얻고 있는 金은 이날 『눈물의 사슬』『마마』등 엔카와 『세일링』등의 팝송을 열창했다.눈물과 땀으로뒤범벅된 그녀가 현란한 가창력으로 노래의 한 소절 한 소절을 마칠 때마다 청중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로 환호했 다.이국땅 일본에서의 애환과 어머니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담은 그녀의 편지도 소개돼 분위기는 더욱 고조됐다.청중들의 이러한 최고예우에그녀는 유창한 일본어로 연신 답례를 했다.『아리가토,아리가토…』 그즈음 서울에선 무슨 일이 벌어 졌나.
일본각료의 망언(妄言)을 규탄(糾彈)하는 항의시위가 연일 벌어졌고 일본상품 불매운동이 일었다.망언을 한 일본외상의 허수아비는 화형식을 당하면서 미처 다 타기도 전에 분노한 시민의 발길에 채여 쓰러졌다.국민들은 독도경비대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격려하는 대통령의 모습에서 「뿌듯함」을,그리고 때마침 독도근해에서 실시된 우리 국군의 늠름한 훈련모습에서 코끝이 찡해오는 나라사랑까지 느꼈을 것이다.
서울의 한 커피점은 담배 등 일본제품을 사용하는 손님의 출입을 금지시켰다.『독도는 우리땅』이란 노래를 히트시켰던 가수 정광태도 미국에서 급거 귀국,노도(怒濤)와 같은 범국민적 일본규탄 대열에 합류했다.신문사엔 일본문화나 일본여성계 에 관한 기사에 항의하는 투고도 있었다.『때가 어느 때인데 일본을 소개하는 기사를 싣느냐』는 질책이었다.모두가 일본의 망언에서 비롯된독도사랑,나아가 애국심의 발로였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대부분의 국민들이(비록 오래전에 녹화된 것일지라도)일본TV에 나와 일본노래를 부른 김연자의 모습을 시청했다면 반응이 어땠을까.대부분 쉽게 『아무리 인기와 돈이 좋다기로서니 「쪽××들 품에 안겨」 일본노래를 하고 일본말로 아양을 떨어?』라고 비난할 수 있었을 것이다.
과연 김연자는 비난받아 마땅한 짓을 한 것일까.결론부터 말해결코 그렇지 않다.
우선 우리는 독도문제와 관련해 지나친 흥분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이번 파문은 일본측의 말도 안되는 생트집에서 시작됐다.놀부 호박에 말뚝박듯 심심하면 망언으로 남 「골지르는」것이 일본극우파들의 생리다.정작 대다수의 일본인들은 다케 시마(竹島.독도의 일본식 표현)가 어디에 있는지도 잘 모른다.일본국민들이 독도문제에 대해 「이상할 정도로」 태연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따라서 전혀 이상하지 않다.
이런 마당에 우리만 흥분한다면 결과적으로 일본인들의 잔꾀에 놀아나는 꼴이 된다.『봐라,한국사람들이 약점이 있으니까 저렇게날뛰는 것 아니냐』-아마도 일본인들은 이런 선전을 해댈 것이고저간의 사정을 잘 모르는 외국사람들은 그런가 보다 할 것이기 때문이다.
흥분하는데 쓸 그 국민적 에너지를 차분하게 결집해 진정한 극일(克日)을 이루는데 사용하자.입으로는 일본을 규탄하면서 일본노래를 표절한 사실을 알고도 「룰라」「EOS」등의 노래를 즐겨듣는다거나,하고 많은 이름중에 하필이면 자민당. 일본신당과 비슷한 정당이름밖에 생각나지 않는다면 진정한 의미의 극일은 어렵다. 진정한 극일은 뜨거운 가슴보다 차가운 머리를 요구한다.흥분한 일본비판자보다 냉철한 일본전문가가 많아져야 한다는 얘기다. 따라서 비록 직업적 이유에서지만 온갖 어려움 속에 일본.일본인을 정확히 알려고 노력한 김연자,그때문에 국위도 선양하면서일본인들의 인기를 얻고 있는 김연자는 오히려 칭찬받아 마땅하다.
劉載植 대중문화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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