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포커스>오마에(大前)의 敗戰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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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오마에 겐이치(大前硏一)라면 한국에도 상당히 알려져 있는 일본의 대표적 평론가중 한 사람이다.저서중 『세계경제는 국경이 없다(Borderless World)』등 6권이 한국어로 번역출간된 바 있고 『신국부론(新國富論)』『헤이세이( 平成)유신』등은 일본에서 30만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였다.
그의 평론은 일본정치의 부패구조와 제도 피로 현상이 국가발전을 얼마나 저해하고 있는가를 통렬히 비판한 것으로 유명하다.그는 단순히 평론가를 넘어 92년부터 「헤이세이 유신의 회(會)」라는 시민운동단체를 결성,평론과 강연을 통해 『 일본은 바뀌어야 한다』고 역설하고 다녔다.그러다가 지난해엔 직접 정치에 뛰어들어 도쿄(東京)도지사.참의원선거에 출마했다가 참패하고 말았다. 그런 오마에가 최근 『패전기(敗戰記)』라는 책을 써 일본정계에 또한번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패전기』는 정치개혁에 대한 그의 이상이 현실정치 앞에 얼마나 공허하고 한계가있었는가를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다.그가 선거전에서 제 일 먼저뜨거운 맛을 본 것은 상대에 대한 중상.비방이 판을 치는 이른바 네거티브 캠페인의 실상이었다.도지사 출마선언을 하자 곧 자민당언저리에서 「오마에는 북조선(北朝鮮)출신」이라는 소문이 퍼졌다.선친이 육군대위로 제2차세계대전에 참전한 은급(恩給)대상임을 입증,가까스로 불을 끄는가싶더니 이번엔 『「헤이세이유신의회」가 통일교의 외곽단체』라는 헛소문이 퍼졌고 이어 부인이 미국인임을 빗대 「유대인 끄나풀」이라는 말까지 나돌았다.불과 17일간의 법정운동기간은 진 실을 해명하기엔 너무 짧았다.
그는 또 일본의 선거가 아직도 정책논쟁보다 얄팍한 인기전술에좌우되고 있는 것에 크게 실망했다.「일본을 바꾸는 방안」「新도쿄비전」등 심혈을 기울여 짜낸 「정책 걸작」을 현행 선거법아래서는 차별화해 세일즈할 방법도 없었고,무엇보다 유권자들이 정책엔 별로 관심을 안 갖더라는 것이다.오히려 코미디언 출신인 아오지마(靑島.현 도쿄도지사)가 집안에 틀어박혀 스포츠지.주간지등을 통해 연출하는 기행(奇行).기담(奇談)이 어필하는데 아연하고 말았다.
그런 가운데도 5천㎞를 달리며 유세를 했더니 만나는 사람마다자기를 지지하는 것 같았고,특히 젊은이들의 호응이 좋아 태산을움직일 바람이 부는 것 아닌가 하는 착각이 생기더라는 것이다.
그러나 투표결과는 4위.믿었던 젊은이들은 투표일(일요일)에 모두 놀러가버리고 장년 이상의 무당파(無黨派)층은 코미디언에게표를 던져 정당중심의 기성정치를 야유했다.사후 정밀조사에 의하면 65세의 투표율이 75%이었던데 비해 25세 는 25%였고,평균은 50.1%였다.
오마에를 더욱 낙담하게 한 것은 선거패배후 그에게 밀어닥친 변화였다.한마디로 평론가로서 상종가(上終價)였던 그의 명성과 가치가 하루아침에 바닥으로 추락했기 때문이다.그는 미국에서 한번 강연에 5만달러를 받는 유일한 일본인으로 미국 의 미래학자피터 드러커교수에 버금갔다.지난 10년간 국내외로부터 받은 강연신청 건수가 9백여건을 넘었다.
그러나 낙선과 동시에 강연취소가 잇따랐다.정치인 오마에의 연설은 더 이상 들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그가 단골로 출연했던 NHK도 인연을 끊었다.낙선 정치인은 공영방송의 불편부당(不偏不黨)사시(社是)에 어긋나 우대할 수 없 다는 것이었다.두번의 선거를 통해 6억엔(45억원)을 날려 재산도 축이 많이 났다.그는 지금 참담한 심정으로 정책제언의 시민운동을 계속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이번 한국의 총선에도 각계에서 나름의 업적을 쌓은 전문가출신의 신인들이 다수 참여하고 있다.아마 당선자보다 오마에같은 패배자가 더 많이 나올 것이다.낙선이 개인적 출세의 좌절을 뛰어넘어 오마에처럼 의미있는 현장고발의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전육 일본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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