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탈선 열차 아파트와 충돌… 40여년 만에 최악의 사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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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가사키의 열차 전복 사고 현장에서 25일 저녁 구조대원들이 열차 안에 갇혀 있는 승객들을 구출하기 위해 차체를 뜯어내고 있다. [아마가사키 AP=연합]

25일 오전 일본 효고(兵庫)현 아마가사키(尼崎)시에서 발생한 전동 열차 탈선사고의 사망자가 이날 오후 8시 현재 54명에 이르렀다. 이 가운데 남자가 31명, 여자는 23명으로 잠정 집계됐다. 부상자는 417명이다. 철도 선진국 일본의 자존심을 무너뜨린 참사였다.

◆ 아파트 들이받고 구겨져=사고 열차에는 객차 7량에 승객 580여 명이 타 만원이었다. 출근.통학 승객이 많았다. 전동차는 후쿠지야마(福知山)선 다카라쓰카(寶塚)역을 출발해 도시샤(同志社)로 향하던 중이었다.

사고 열차는 건널목 부근 곡선 구간에서 앞부분 객차 5량이 선로를 이탈해 전복됐다. 특히 인명 피해가 커진 것은 탈선한 열차가 승용차와 충돌한 뒤 중심을 잃고 선로변의 9층 아파트를 들이받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찌그러진 객차 출입문이 한동안 열리지 않아 구조작업이 지연됐다. 아파트 6층에 사는 한 여성(26)은 "한신(阪神) 대지진 때보다 더 큰 진동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날 참사는 161명이 사망한 1963년 도쿄(東京) 인근 요코스카(橫須賀)선 철도 사고 이래 42년 만의 최대 규모다. 91년엔 시가(滋賀)현 시가라키(信樂)고원의 철도 정면충돌 사고로 42명이 숨졌다.

◆ 1분 만회하려고 과속했나=정확한 사고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곡선 구간에서 제한속도(70㎞)를 넘어 과속 운행했을 가능성을 지적했다. 서일본철도 측은 "이 구간에서 과속으로 탈선하려면 시속 133㎞를 넘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사고 열차가 오전 9시14분쯤 직전 정차역인 이타미(伊丹)에서의 출발 시각이 정시보다 1분30초가량 지체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따라 기관사가 지체된 시간을 만회하기 위해 곡선 구간에 접어든 뒤에도 규정대로 속도를 늦추지 않고 달리다 급제동을 거는 바람에 열차가 탈선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생존자들에 따르면 사고 열차는 직전 역에서 정차 지점을 8m가량 지나치는 바람에 "역을 지나쳐 죄송합니다"란 안내방송과 함께 후진을 해 제자리에 섰다. 이 때문에 발차가 1분여 지연됐다. 한 승객은 "늦어진 시간을 벌충하려는지 바깥 풍경이 휙휙 바뀔 정도로 속도를 올려 무섭다고 생각하는 순간 탈선 충격을 느꼈다"고 말했다. 서일본철도 측은 "사고 열차의 기관사가 지난해에도 역 플랫폼을 지나쳐 정차한 일이 있었다"고 전했다. 사고를 낸 기관사는 올해 23세로 경력 11개월째의 초보자로 드러났다.

셋째 칸에 탔던 60대의 남자 승객은 "갑자기 차체가 선로 서쪽으로 기울었다"면서 "비명소리가 들리는 순간 뒤쪽에 있던 승객이 객실 한가운데로 날아왔다"고 사고 순간을 전했다.

열차가 소속된 서일본철도 측은 "현장조사 결과 사고가 발생한 선로 위에서 부서진 돌 조각이 발견됐다"며 "이것이 사고와 관련이 있는지를 면밀히 분석 중"이라고 말했다.

사고 지점 부근에는 보호벽이 따로 설치돼 있지 않았다. 서일본철도 측은 사고 구간에 설치된 제어장치는 일본에서도 가장 구형이라고 밝혔다.

도쿄=예영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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