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대학 등록금 인상분쟁-불가피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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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등록금 인상 문제로 새학기를 앞둔 대학가가 홍역을 앓고 있다.정부가 물가 대책의 일환으로 인상률 억제를 촉구하고 있는 가운데 각 대학 총학생회는 인상 저지투쟁에 나서고 있다.반면 대학.재단측은 등록금 인상이 교육시장 개방을 앞두고 경쟁력 강화를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며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이다.해마다 되풀이 되는 「등록금 분쟁」을 종식시킬 방안은 없을까.대학 등록금 인상을 둘러싼 찬반 논리를 들어본다.
다 아는 바와 같이 우리는 곧 교육시장을 개방한다.만약 미국의 명문대학이 우리 나라에 분교를 개설한다면 국내 대학 가운데이런 대학과 경쟁할 수 있는 대학이 몇이나 될까.
지금 대학의 외적 상황은 서둘러 시장 개방에 대비해야 할 처지이지만 대학의 내적 수준은 한심하기 짝이 없다.세계 1백대 명문대학에 들려면 도서관의 장서가 5백만권 수준에 이르러야 한다.그러나 서울대와 고려대.연세대.포항공대의 장서 까지 합해도5백만권을 밑돈다.
고려대의 경우 새 해에 많은 신임교수를 초빙하지만 그 분들을위한 연구실마저 마련돼 있지 않다.어떤 강의실에는 서서 강의를듣는 학생이 상당수에 이른다.실험실습을 위한 설비는 노후해 쓸모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대학은 학생들이「석기 시대적」이라고 조롱해도 할 말이 없는 실정이다.
사립대가 이렇듯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재정문제 때문이다.
사립대의 재정을 정부가 지원하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다.미국의 경우 주(州)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대체로 사립대 재정의 20%이상을 정부가 지원한다.일본에서도 사립대 재정의 15%정도를국고지원으로 충당한다.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정부는 국립대 지원에만 치중한다.정부의 재정지원은 고려대의 경우 총 예산의 2%에지나지 않는다.이는 일국의 명문 사학(私學)이 나라의 인재를 기르면서 정부로부터 거의 도움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선진 외국에선 기업이 사립대를 많이 지원한다.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일부 기업이 교육분야에 지원하지만 그 총액은 미미한 수준이다.고려대의 경우 자구(自救)노력의 일환으로 지난 한해에 1백억원이 넘는 성금을 모았다.그러나 30대 재벌로 부터 받은성금은 거의 없다.최고액 기탁자는 삯바느질로 살아온 이름 없는할머니다.
대학에 대한 정부나 기업의 지원이 없는 상황에선 재단이라도 튼튼해야 한다.그러나 우리나라 사립대는 솔직히 말해 재단의 실체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부나 기업이 돌보지 않고 재단도 유명무실한 상황에서 사립대는 그러면 어떻게 교육여건을 개선하고 세계의 명문대학과 당당하게 겨루어 나갈 것인가.자구노력을 통해 재원을 확보하면서 수익자 부담의 원칙에 따라 재학생의 등록금을 올릴 수 밖에 없다.
사립대 등록금을 억제하려는 정부의 처지를 이해할 수도 있지만 획일적인 조치엔 문제가 있다.현재 사립대의 등록금은 천차만별이다.대학간 1년 등록금이 1백만원 이상 차이가 나기도 한다.그런데도 정부는 이를 덮어두고 획일적으로 인상률15%선을 강요한다. 등록금을 올리지 않도록 하려면 정원제라도 융통성있게 운용해야 한다.수도권 정원은 총량적으로 고정하더라도 상대적으로 교육여건이 좋고 학생이 선호하는 대학에는 그에 상응하는 배려를 해야 한다.정부는 대학이 개방시대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대학지원을 획기적으로 확충하고 관련 정책도 일신해야 한다.
김민환 고려대 기획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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