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 시평

호랑이에게 날개 달아주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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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지금 지구상에 있는 생물의 종류는 빠르게 감소해 가고 있다. 인간의 압도적인 지위 때문에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기 때문이다. 생물학자들에 의하면 종(種)이 다양해지고, 개체수가 풍부해지는 시점은 생태계가 가장 균형을 이룬 때라고 한다. 육식동물은 적정 개체수에 이르면 번식을 스스로 억제한다. 만약 호랑이가 날개를 달았다고 생각해 보라. 호랑이들은 배고플 때를 기다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사냥할 것이므로 숲의 동물들은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결국 더 이상 먹잇감이 없는 호랑이 또한 자멸하게 될 것이다. 조물주는 호랑이 스스로의 생존을 위하여도 날개를 달아주지 않는다.

우리의 정치생태계에도 똑같은 원리가 적용된다. 민주정치의 꽃은 견제와 균형이 이상적으로 이루어질 때 가장 활짝 피어난다. 아무런 견제 장치가 없는 무소불위의 권력이 탄생한다면 민주사회의 다양성은 사라질 것이며 획일적인 가치가 강요될 것이다. 이미 지난 1년여 동안 이 나라 자유민주주의 게임의 법칙은 정글의 법칙으로 대체되어 왔다. 감성이 이성과 합리성을 압도하는 시대가 되었다.

만약 지금과 같은 추세로 총선에 이르러 여당이 압도적 승리를 차지한다면 이는 우리나라 초유의 최강권력이 탄생하는 것을 의미한다. 참여정부와 여당은 선전.선동 능력과 대중동원 능력에서 탁월하다. 한편으로 정부의 막강한 정보력을 갖고 있으면서 다른 한편으로 공영방송을 중심으로 하는 언론수단의 힘을 보유하고 있다. 시민운동을 비롯한 사회세력의 힘과 인터넷 공간을 지배하는 여론 개미군단의 힘을 업고 있다. 총체적인 정치기획 능력 또한 발군의 경지에 있다.

이러한 막강한 정치세력이 민주정치의 중요한 견제 장치인 의회에서조차 과반수를 훨씬 초과하는 의석을 확보한다면, 이것은 마치 호랑이가 날개를 다는 격이다. 과거 군사독재도 이렇게 막강하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강력한 물리력은 가졌으되 고도의 이미지 플레이와 여론 같은 소프트한 힘을 갖추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출석을 의무화해서 예비군 교육에 동원할 수는 있었어도 휴대전화 메시지로 감성을 움직여 광화문에 모이게 하는 힘은 갖추지 못하였다.

여론은 곧 민심이다. 그러나 때때로 여론은 여름날의 하늘처럼 변덕스럽다. 이것이 여론의 양면성이다. 1980년대 군사독재를 끝내고 민주화를 쟁취할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국민의 여론, 즉 민심이었다. 그러나 때때로 여론은 군중심리에 휩쓸려 나라의 발전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몰리기도 한다.

오늘날 대의민주주의가 세계적으로 시험대에 올라 있는 이유도 바로 여론의 패러독스 때문이다. 원래 대의민주주의는 소수의 선동 정치가가 대중을 움직여 우민정치로 치닫는 직접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생겼다. 그러나 대의민주주의 역시 여론의 볼모가 되기는 마찬가지였다.

현재 미국인들이 가장 신뢰하고 있는 기관은 연방대법원과 군(軍), 그리고 연방준비제도이사회 등이다. 이러한 기관을 이끌고 있는 임명직 전문가들은 여론의 향배와 상관없이 미국의 장기적 이익을 생각해 판단하고 행동한다. 반대로 의회는 불신의 제1호 대상이다. 선출직인 의원들은 여론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대중에 영합하기 때문이다. 여론을 너무 따라도 탈, 여론을 무시하여도 탈이다. 파리드 자캐이리어가 쓴 '자유의 미래'에 의하면 민주주의가 일정 수준 이상 발전하면 민주주의와 자유 사이에는 긴장관계가 성립한다. 더 많은 민주주의가 더 많은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때부터 자유와 민주주의 사이에는 반비례 관계가 성립한다.

촛불시위 때 대표적으로 불린 노래의 가사를 들어보라.

'나라 걱정하지 마, 제발 걱정하지 말아줘'.

한 줌밖에 안 되는 이 나라 우국지사들이 나라의 미래를 걱정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유는 확보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각범 정보통신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