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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위석칼럼>외손자 볼 날을 기다리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무남독녀를 잘 길러 학벌 좋고 허우대 좋은 사내에게 시집 보낸 어떤 장인이 그 사위와 어느날 사우나탕에 갔다.사위의 아랫도리를 찬찬히 관찰하고는 탄식했다.『외손자 보기는 다 글렀구나!』(이 탄식을 사위가 알게 됐을 땐 얼추 다음 같은 반격을 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1.조급해 마시고 아직 더 기다리세요.2.그런 것은 아랫도리 외관으론 판단 못해요.3.나만 가지고 그럴 것 아니라 여탕에 잠입해 따님쪽도 검사해 보셔야지요.
) 한 유명 중견기업가,그는 요즘 교양강좌의 명강사로 청중의 환호를 받고 있다.특히 중소기업인들은 이 사람의 강연을 듣고 스트레스를 푼다고 한다.그의 연설 가운데 한 대목.
『우리나라의 법은 입법취지와는 정반대의 구실을 하기 일쑵니다.예를 들어 주택임대차보호법은 세들어 사는 사람 보호하려고 만든 법이지만 이 법이 발효하자 전셋값이 2~3배 올랐습니다.결과적으로 오히려 셋방살이 하는 사람은 울리고 집 주인에게 득을줬지요.우스운 것은,이 법 제정에 앞장서 뛰었던 아는 국회의원한 사람이 자기가 세들어 사는 집 전셋값이 갑자기 두 배로 올랐다면서 나보고 2천만원을 꿔 달라기에 꿔 줬어요.그 사람 그돈 아직 못 갚고 있습니다.』 새로 설립될 중소기업청이 중소기업에 혜택을 주기는커녕 도리어 부담만 가중시킬 것이라며 중소기업계가 반발하고 나섰다고 한다.기업에 관련된 규제(법)는 어떤조항은 모호하고,어떤 조항은 다른 조항과 모순되고,어떤 조항은수준이 너무 높아 숫제 지키기가 불가능하다.우리나라 기업규제의가장 큰 특징은 사후적이 아니라 「사전적」으로,간접적이 아니라「직접적」으로,일반적이 아니라 「개별적」으로 규제조항들을 빼어든다는 점이다.이런 조건을 그대로 둔 채 중소기업청이 생 기면기업을 돕는 선한 목자가 아니라 전문으로 따라다니며 못 살게 구는 신생(新生)악마가 될 수도 있다.이렇게 되면 기업이 어떻게 외손자 보기를 바랄 수 있으랴.
『우리나라에서는 되는 것 없고 안되는 것 없고….』이 말을 못 들어 봤거나 못알아듣는 입법자.행정가.사법인이 있을까.그러나 모르는 척하고 한번 더 풀자.이 말을 완성시키는 데는 돈이두 번 들어간다.(돈 안 들이고) 되는 것 없고 ( 돈 들여서) 안되는 것 없다는 얘기다.
내가 보기에 현행 기업규제의 가장 큰 문제점은 그것이 커 가는 발달기의 청년 같은 우리 경제의 몸이나 마음에 너무 작은 운동화,창의적 경쟁을 하기엔 너무 심한 간섭이라는 점이다.그런데 맞는 운동화를 사려거나 자기의 창의대로 하려면 대기업은 6공 때까지는 대통령에게까지 뇌물을 써야 했다.작은 기업은 지금도 수다한 관련공무원에게 돈을 써야 한다고 한다.이것은 아주 소수의 예외를 제외하면 권력의 일방적 토색질이지 정경유착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정경유착이란 대체로 토색질의 고의적(故意的) 미화어(美化語)이거나 실수로 쓰는 오용어(誤用語)다.기업 스스로 이 말을 자진해 썼다면 권력에 대한 공포심에서 선택한 완곡어(婉曲語)일 것이다.부임하는 족족 신관(新官)은 구관(舊官)과 마찬가지더라는 사실은 우리 역사의 오랜 경험 아니었던가. 지난달 31일 30대 기업 총수들을 청와대로 불러 놓은 자리에서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이 『기업들은 이제 과거 어두운 정경유착의 관행을 근절하고 밝고 떳떳한 새로운 경제질서 구축에 합심해주기 바란다』라고 했을 때 그가 근엄하게 정경 유착이라고말한 것은 구관에 이은 고의였을까,아니면 신관의 실수 가운데 또 하나였을까.
역사 바로 세우기는 과거의 역사라면 역사가(歷史家)가 볼펜이나 워드프로세서로 할 일이다.잘못된 사실을 고치고 왜곡된 평가를 바루는 것이 과거 역사 바로 세우기다.
정치가 담당해서 바로 세워야 하는 역사는 현재와 미래다.金대통령이 표방하는 대로 부패척결은 정치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역사 바로 세우기 항목이다.되는 일 없고 안되는 일 없다는 한마디 말이야말로 우리나라 부패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과잉규제를정치가 개혁하지 않기 때문에,또는 게그물 쳐 놓듯 일부러 설치해 두고 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기업이 건별(件別)로 해결하자니 돈이 들어간다.이것을 고의든 실수든 정경유착이라고 부름으로써 그 책임의 절반을 기업에 돌려 검찰청 소관으로 달아 둔대서야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외손자 보기는 아직 틀렸다.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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