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한테 배워 ‘동병상련 이주여성’ 풍물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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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오후 1시 구미 가톨릭근로자문화센터에서는 이색 풍물패가 탄생했다. 중국·베트남·캄보디아 등 세계 여러 나라 출신 이주여성 15명으로 구성된 ‘다문화 풍물패’다.

이주여성을 단원으로 하는 풍물패는 흔치 않다. 더욱 눈길을 끄는 것은 이 풍물패의 지도자 역시 이주여성이란 점이다.

주인공은 캄보디아 출신의 소뜨 소피업(27). 그는 2007년 4월 한국인 남편 김대호(47)씨와 캄보디아에서 결혼했다. 이후 김씨의 고향인 구미에 정착해 생활하고 있다.

소피업의 장구 실력은 수준급이다. 그의 장구 스승은 바로 남편이다. 남편 김씨는 구미 형곡동에서 ‘사물놀이 마당’을 운영하는 풍물 전문가다. 풍물에 매료돼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20여 년전부터 장구·북·꽹과리·징 등을 손에서 놓지 않고 있다. 10여 년전부터는 사물놀이 마당을 운영하고 복지·문화센터 등에서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살아온 환경과 생활 양식이 다르다 보니 공통점이 없었어요. 소피업이 한국 문화를 알아야 부부간 애정이 깊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택한 것이 사물놀이였습니다.”

김씨는 결혼 직후부터 일주일에 2~3일씩 한번에 2~3시간 소피업에게 장구를 가르쳤다. 처음에는 말이 통하지 않아 무지하게 애를 먹었다.

김씨는 그때마다 수없이 같은 말을 반복해 설명하고 장구를 두드리게 했다.

그의 호통에 소피업은 수시로 눈물을 흘렸다. 소피업은 “남편이 혼내는 바람에 고국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면서 눈물이 막 쏟아졌다”며 띄엄띄엄 말했다. 소피업은 “캄보디아와 한국의 악기·리듬이 달라 배우기가 정말 어려웠다”고 말했다.

김씨는 “아내가 음악에 끼가 없는 것 같아 혼을 많이 냈는데 그때마다 눈물을 흘려 안쓰러웠다”고 털어 놓았다.

소피업은 시간이 갈수록 장구에 재미를 붙였다. 실력도 눈에 띄게 늘었다. 덕분에 지난 6월 8일에는 전국사물놀이대회에 출전해 놀랄만한 성적을 거뒀다. 참가자 중 유일하게 외국인이었던 소피업이 ‘우수상’을 받은 것이다.

짧은 시일에 능수능란하게 장구를 다루는 소피업의 모습에 풍물패 단원은 물론 이주여성에게 한국어 등을 가르치는 센터 직원들도 감탄하고 있다.

베트남 출신으로 한국 국적을 취득한 김현주(33)씨는 “소피업과 장구 때문에 이국만리 타국 생활이 즐거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0개월간 실력을 쌓은 소피업은 김씨가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구미 가톨릭근로자문화센터에서 다른 이주여성의 지도를 맡았다. 센터의 지원을 받아 이주여성만으로 풍물패까지 구성, 매주 수요일에 연습을 하고 있다. 풍물패는 앞으로 구미지역의 축제 등 행사 때 실력을 선보일 예정이다.

구미 가톨릭근로자문화센터의 윤수정(31)상담원은 “소피업의 모습을 본 이주여성들이 한국 생활의 불안감을 떨쳐버리고 빠르게 한국 문화를 이해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황선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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