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서울은 뮤지컬 빨아들이는 블랙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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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귀를 의심했다. 심지어 ‘한국 물정 너무 모르는 바보 아냐’하는 생각도 했다. 뮤지컬 ‘드림걸즈’ 얘기다.

대중에겐 영화로 더 친숙하지만 ‘드림걸즈’는 본래 뮤지컬 작품이다. 1981년 초연돼 이듬해 토니상 6개 부문을 휩쓸 만큼 인정도 받았다. 이후 잠잠하던 ‘드림걸즈’를 부활시킨 건 2006년. 에디 머피·비욘세 등이 출연한 영화가 전 세계적으로 빅히트했고, 뮤지컬로도 리바이벌되기에 이르렀다.

놀라운 점은 이토록 세계적인 브랜드의 재점화가 한국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내년 3월 샤롯데 극장이 ‘드림걸즈 재공연’의 세계 첫 무대다. ‘드림걸즈’의 판권이 있는 존 F 브릴리오(사진)와 한국의 오디뮤지컬컴퍼니(대표 신춘수)가 공동 제작한다. 작곡·연출·무대 등은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 창작자들이 책임지고, 출연은 한국 배우가 맡는 방식이다. 왜 ‘드림걸즈’는 전 세계 공연의 메카 브로드웨이를 접어두고 변방에 불과한 한국에서 첫 무대를 가질까. 프로듀서 브릴리오로에게서 그 이유를 들었다.

-왜 한국을 선택했는가.

“최근 브로드웨이는 제작비가 너무 올랐다. 대부분의 제작자가 브로드웨이에서 처음 공연을 올리지 않는다. 위험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오프-브로드웨이에서 먼저 시험을 하거나 아니면 보스턴·시카고·LA 등에서 투어 공연을 한 뒤 브로드웨이에 입성하는 게 일반적 경향이다. 한국에서 공연을 먼저 하는 건 마치 미국의 보스턴 대신 한국의 서울을 택한 것과 같다. 게다가 한국 시장은 젊은 관객이 압도적이다. 미래가 더 희망적이란 얘기다.”

-이번 한국 공연의 파트너인 신춘수 대표는 ‘지킬 앤 하이드’ ‘맨 오브 라만차’ 등을 성공시켰지만, 이는 다 라이선스 공연이다. 창작 능력은 전무한데….

“맨 처음 미팅을 할 땐 ‘드림걸즈’의 한국 라이선스 공연을 할 예정이었다. 그러다 신 대표도 나도 생각이 조금씩 바뀌었다. 원래 있던 공연을 ‘편하게’ 올리기 보단 ‘힘들어도’ 사고를 치고 싶었다. 그게 프로듀서의 속성이자 운명인 것 같다. 그래서 창작 진용을 재편해 새로운 버전의 ‘드림걸즈’를 탄생시키기로 했다. 특히 지난해 10월 한국을 방문해 ‘샤롯데’극장을 보곤 ‘이런 좋은 여건의 극장에서 드림걸즈를 다시 올린다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란 확신을 갖게 됐다. 그리고 이번 공연은 단순히 한국 시장이 전부가 아니다. 서울에서 5개월가량 공연한 뒤 아시아·미국 투어를 하고 이어 브로드웨이로 진출한다는 스케줄을 잡고 있다. 서울은 전 세계로 향하는 ‘드림걸즈’의 전진기지 역할을 하게 된다.”

-그래도 쉽게 납득이 안 간다. 한국은 브로드웨이에 비하면 턱없이 작은 시장이다. 파트너는 검증이 안 된 프로듀서다. 제작비는 100억원에 달한다. 모든 게 위험 투성이다. 도박 아닌가.

“주변의 반응도 비슷하다. 드림걸즈를 한다고 하면 다들 반가워하다 ‘한국에서 한다’고 하면 얘기가 딱 끊긴다. 아내는 ‘미쳤다’라고도 했다. 그러나 시각을 넓게 하고 깊게 조망하면 다르다. 전 세계 공연 시장의 두 축이 브로드웨이와 영국 런던의 웨스트엔드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두 지역은 모두 정점에 이르렀고 심지어 침체돼 있다. 두 지역 이외엔 일본이 큰 시장이지만 일본 역시 정체기로 접어들고 있다. 그러나 한국, 특히 서울은 다르다. 역동적이며 블랙홀처럼 뮤지컬을 빨아들이고 있다. 지금 전 세계에서 뮤지컬을 가장 많이 하는 지역은 브로드웨이가 아니라 서울이다. 위험하면서도 그 이상의 가능성이 있다.”

-작품도 조금 달라질 것 같다.

“1981년 초연을 바탕으로 하면서 노래도 새로 추가되고 스토리도 조금 변형된다. 현대 감각에 맞게끔 영상도 많이 활용할 예정이다. 무엇보다 난 폭발적이면서도 감각적인 재능을 갖춘 한국 배우들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슴이 설렐 정도다.”

최민우 기자

◇존 F 브릴리오(John F Breglio)=1946년생으로 본래 변호사였다. 브로드웨이에서 36년간 앤드루 로이드 웨버·스티븐 손드하임 등의 작품에 참여해 법률 자문 등을 해 왔다. 지금껏 관여한 작품만 100편이 넘는다. 본인의 말로는 ‘난 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딴 사람에게 실컷 얘기만 할까’란 생각이 들면서 프로듀서로 방향을 틀었다고 한다. 2년 전 ‘코러스 라인’이 그가 프로듀싱을 한 첫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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