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함께>"한국의 기업엘리트" 펴낸 이장원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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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제일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이장원(李遠.33)씨가 펴낸 『한국의 기업엘리트』(백산서당)는 저자의 젊은 나이답게 우리 사회의뿌리깊은 병폐를 정면에서 파고든다.
오늘날 한국경제의 저력을 닦아온 대기업에 근무하는 사무관리직,이른바 엘리트들이 지금같은 행태를 되풀이한다면 우리 앞날은 암울할 수밖에 없다고 진단한 李씨는 『우리에게 지금까지 진정한엘리트는 없었다』고 잘라 말한다.
왜 그럴까.
『엘리트는 고도의 전문성과 창조성으로 일을 추진하는 경쟁력을갖춰야 합니다.정보혁명이 주도하는 21세기에는 더욱 그렇죠.하지만 우리 회사원들은 자기개발보다 「바깥 사람」 얼굴익히기에 주력하는 인상입니다.』 李씨는 마치 상식같은 이야기에서 논의를시작한다.부존자원이 부족한 열악한 현실에서 우리가 기댈 수 있는 것은 사람과 기술.이 둘이 제대로 결합돼야 「인적 자본」이축적되며 지속적 발전도 가능하다는 얘기다.그렇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 다.그는 수많은 통계와 서울지역 10개 대학 졸업생 4백67명을 조사한 자료를 들고 대기업들의 뒤틀린 인사관리를 매섭게 다그친다.
『만연된 「패거리의식」이 가장 큰 벽입니다.일이 생기거나 잘못되면 정당한 절차가 아닌 소위 연줄을 동원해 해결하죠.』 이때문에 대기업에서는 일류대 출신을 선호하게 된다.정계.관계.재계등 지도층을 형성하는 사람들과의 끈끈한 연대를 맺는데 유리하다는 판단에서다.결과적으로 창의성 개발은 뒤로 밀리고 인맥을 넓히려는데 몰두한다.이에따라 대학 졸업장도 사회적 지위를 보장하는 일종의 자격증으로 전락한다.
『일류대 출신일수록 이직률이 높습니다.서구처럼 더좋은 조건을찾아 움직인다면 탓할게 못되지요.그러나 우리 경우에는 실력과 능력으로 승부할 기회가 막힌 잠재적 엘리트들의 좌절이라고 볼 수 있어요.』 여기에는 물론 정부의 주도와 대기업들의 적극적인참여로 진행된 한국경제의 특수성이 작용한다.李씨도 이런 사실을인정한다.더 나아가 우리의 미래는 국제경쟁의 전위에 설 기업에달려있다고 목청을 돋운다.
『한국기업은 자본주의 주체로서의 제모습을 찾아야 합니다.우선기업내부에서 인적 자본이 정상적으로 발전하도록 길을 터야죠.이를 위해 입사부터 최고경영자에 이르는 투명하고 연속적인 전략을마련해야 합니다.』 특히 그는 『이데올로기의 종언』을 쓴 일본계 미국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최근 저서 『트러스트』에 공감한다고 했다.후쿠야마는 한나라의 지속적 발전은 사회의 신뢰관계에 놓여있다고 전제하고 한국과 중국은 가족 이외에는 타인을 믿지 않 기 때문에 성장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일류대를 졸업하고 국내 유수의 기업에 입사하고도 항상 미래에대한 불안으로 고민하는 친구들의 모습이 연구의 계기가 되었다는李씨. 연세대 사회학과를 마치고 미국 시카고대에서 사회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그는 현재 교수.변호사.연구원 등이 주축이 된 나라정책연구회회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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