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시인 로스 한국견문록 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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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한국은 잃어버린 시심(詩心)을 되살려주었다.』 영국의 원로시인 앨런 로스(74)가 어려서부터 꿈꾸었던 한국을 찾아 느낀감회를 30여쪽에 서술한 견문록이 지난해말 영국에서 나와 화제다. 제목은『부산기행(원제 After Pusan)』(사진).이문열 소설 『시인』의 영역판을 냈던 하빌출판사에서 나온 이책은조선시대후기의 자수(刺繡)문양을 표지로 삼는 등 저자의 한국에대한 애정을 꾸밈없이 드러낸다.
로스가 한국과 맺은 인연은 각별하다.1922년 인도 캘커타에서 태어나 벵골지방에서 성장한 그는 유년시절 세계지도에서 부산과 우연히 마주치게 된다.
그것도 일본의 한구석에 조그맣게 표기된 부산을.
그후 부산은 마치 희미한 추억처럼 그의 마음에 각인됐다.
다른 인연은 소설가 김승옥의 단편 『서울 1964』와 맺어진다.70년대 중반 영국의 문예전문잡지인 『런던매거진』에 소개된이 소설에 흠뻑 빠져들었다.
그리고 10년후인 86년 가을 고려대 정종화교수의 알선과 한국정부의 초청으로 한국을 처음 방문,부산에서 시작해 경주.서울을 거쳐 비무장지대까지 우리국토를 꼼꼼하게 훑게 된다.
『부산기행』에는 이같은 로스의 독특한 체험이 고스란히 농축됐다. 이탄이나 심훈.강은교.신경림 등의 시가 나오는가 하면 그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던 김승옥의 부산집을 찾아 함께 나눈 이야기도 등장한다.
1백여년전 한국을 방문했던 영국 이사벨라 비숍의 『한국과 그이웃나라』에 소개된대로 한강을 거슬러 올라갈 때는 옛자취가 사라진 한국의 모습에 당황하는가 하면 TV 야구중계에 빠진 승려들이나 조잡한 기념품이 가득한 절앞에서는 실망하 기도 한다.
반면 그는 한국을 여행하면서 그동안 상실했던 시상(詩想)이 다시 떠오르기 시작,다시 시인으로서 일어날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달라진 현실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여전히 「황금빛 순수와 신선함」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지난 80년 발표한 시집 『죽음의 계곡』이후 시작(詩作)을 중단했다고 한다.
『부산기행』에는 당시의 감흥을 바탕으로 쓴 『감』『부산서정』등 세편의 시도 실려있다.
옥스퍼드대 출신으로 영국시집협회 작가상을 수상한 로스는 현재『런던매거진』의 편집장 겸 사주(社主)로 일하고 있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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