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대담>이강숙 예술종합학교교장.도야마 日도호음대 학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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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한.일 양국 음악계의 대부(代父)들이 모처럼 무릎을 맞대고 자리를 함께 했다.한국예술종합학교 이강숙(李康淑.60)교장과 일본 도호(桐朋)음대 도야마 가즈유키(遠山一行.74)학장.두 사람은 양국 음악계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물론 경력도 비슷한 점이 많다.각각 실기위주의 음악교육으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학교의 최고책임자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한편 지금도필봉을 휘두르며 후배들의 귀감이 되고 있는 최고의 음악평론가라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지난 16일 일본 도쿄(東京)에 있는 도호음대 학장실.이날 이들은 「아시아 음악과 미래의 음악교육」을 주제로 격의없는 대화를 나누었다.「음악계의 한.일 정상」이라 할 수 있는 이들의 대담을 중앙일보가 도쿄 현지에서 단독 취재했다.
[편집자註] 이강숙=한국과 일본은 가까우면서도 먼 사이라고들하지요.음악도 예외는 아닙니다.저 개인적으로도 물리적 거리는 가깝지만 심리적 거리는 아직 멀게만 느껴집니다.이번 만남이 한-일간 음악교류에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서로 알게 되는 지름길은 자주 만나 교류하는 게 아닐까요.
도야마=음악교류라 하면 마치 오케스트라나 오페라단이 오고 가는 것을 떠올리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우선 양국의음악가들이 개인적으로 만나는 것부터 차근차근 시작하는게 중요합니다. 이강숙=전적으로 동감입니다.그런 점에서 오늘 이 만남이갖는 역사적 의미도 매우 크다고 생각합니다.무엇보다 평론가로서의 만남이라는 점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습니다.한국에서는연주가.작곡가의 관심과 평론가의 관심이 좀 다릅니다 .평론가들은 음악 뿐만 아니라 정치.사회.경제 등 더 넓고 깊이있는 문제에도 관심을 갖고 있지요.
도야마=저도 전문가의 입장에서만 평론하는 것은 반대입니다.평론가들이 음악가들의 편에 너무 치우친다면 객관성을 상실하게 되겠지요.평론은 청중과 일반 애호가의 입장을 대변해야 합니다.
이강숙=도야마 선생은 일본 음악평론계의 대부(代父)라고 들었습니다.젊은 평론가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도야마=(웃음)무엇보다 훌륭한 인간이 되는게 중요합니다.또 뛰어난 문장력과 자기 스타일을 가져야겠지요.음악에 대한 열정과지식을 소유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말입니다.일본에서도 제 또래의 평론가들은 대부분 음악애호가 출신이어서 어 릴 때부터 음악공부를 하지 않았습니다.앞으로는 음악학교에서 전문교육을 받은평론가들이 많이 배출돼 분석력있는 비평을 써야 합니다.
이강숙=음악이 인간에게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도야마=글쎄요.인간이 난폭한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지만 싫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오히려 이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지요.음악이 누구에게나 가치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그러나 학교 교육은 클래식 음악을 모든 사람이 좋아해야 한다고 강요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음악이란 민요나 대중가요일 뿐 클래식은 어디까지나 소수를 위한 것이라고 봅니다.
이강숙=저는 실기 중심의 전문예술교육 기관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 초대교장으로 부임했습니다.실기위주의 예술교육기관이라는 점에서 도호음대와 비슷한데 도호음대 자랑좀 해주시죠. 도야마=일본엔 한국예술종합학교처럼 모든 예술분야를 망라한 국립예술학교는 아직 없습니다.제가 설립당시부터 인연을 맺어온 도호음대는 음악을 어릴 때부터 가르쳐야 한다는 교육이념에서부터 출발했습니다.61년에 개교한 저희 학교는 지금까지 지휘자오자와 세이지.김홍재(교토심포니 부지휘자),바이올리니스트 정찬우(연세대 교수).야스나가 토루(베를린필 악장)등 세계적인 연주자를 배출해왔지요.
이강숙=도시의 발생과정에 비유하자면 도호음대가 작은 음악교실에서 큰 전문교육기관으로 커나간 역사있는 학교라면 예술종합학교는 계획도시 같다고 보면 되겠습니까.
도야마=계획도시란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저희 학교는 지난해9월 도야마(富山)시에 도호오케스트라 아카데미를 개교했습니다.
여긴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 단원을 전문적으로 배출하는 학교입니다. 이강숙=한국어에 낯가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갓난애가 태어나면 엄마조차 낯설어 하다 1년쯤 지나면 엄마의 얼굴을 알아본다는 거죠.일단 낯가림이 끝나면 엄마가 죽더라도 평생 그 얼굴이 생각나는 겁니다.마치 무의식중에 배우게 되는 모국 어처럼말이죠.조기교육은 모국어처럼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도야마=흥미로운 비유군요.
이강숙=일본에는 조기교육을 전담하는 교사들을 양성하는 기관이있는지요.
도야마=아직 없습니다.하지만 조기교육을 받은 사람이 조기교육을 시키는게 바람직합니다.도호음대도 여기에서 출발했습니다.현재도호음대 출신 교사들이 일본 전역에 있는 20여개 음악영재 교육기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이강숙=저희 학교에도 청소년을 위한 예비학교를 운영하고 있는데 음악영재 교육을 제대로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음악의 가치는 마음속에 도야마=매우 어려운 문제군요.아시다시피 음악은 우선 테크닉이 중요하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배워야 하지 않을까요.그러나 이제 돌이켜 보면 실기위주의 조기교육에도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3세때부터 악기를 배우기 시작해 10세 정도만 되면 테크닉은 수준급에 도달합니다.하지만 자신을 돌이켜 보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어느날 아침 음악가가 돼 버리는 거죠.이제는 부모님들이 모든 것을 학교에만 맡겨선 안됩니다.음악이 자녀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깨우쳐 주어야 합니다.기량이 뛰어나다고 반드시 훌륭한 음악가가 된다는 법은 없기 때문이죠.예술가란 남과 다른 생각의 깊이나 상상력이필요합니다.자기발견의 연습이 끊임없이 되풀이돼야 합니다.교사도학생이 선생과 틀리게 연주하는 것을 나무라지 말고 왜 그렇게 하는지 이유를 밝혀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강숙=음악가는 소리를 재료로 사용하지요.인간은 자기 주변 재료와의 관계를 관찰하는 눈을 갖고 있습니다.이 눈을 긍정적인방향으로 길러주는 것이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교육의 이념입니다.단순한 예술교육에만 국한 된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인간을 위해,예술을 위해,사회와 국가를 위해 좋은 인간을 길러내는 것이죠.학장님은 교육을 어떻게 정의하십니까. ***21세기는 아시아의 시대 도야마=음악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게 아니라 자기의 정신과 영혼을 위해 받아들이는 적극적인 소양을 길러 주는 것이 음악교육의 목표라고 생각합니다.이미 완성된 대가의 기술을 무조건 따라하면서 세계화의 물결에 뒤지지 않는 것만으로는 자신의 음악세계를 형성할 수 없습니다.음악의 가치는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 속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겠지요.
이강숙=내년에 개관되는 도쿄 제2국립극장 예술감독을 맡으셨다고 들었는데 준비는 잘 돼가고 있습니까.
도야마=97년 10월초부터 98년 1월까지 개막축제가 계속됩니다.개관에 즈음해 3개의 대형공연을 계획하고 있습니다.원로작곡가 단 이쿠마(團 伊玖磨)가 일본의 고대설화를 기초로 쓴 창작오페라 초연에 이어 바그너의 『로엔그린』,베르디 의 『아이다』가 상연됩니다.바그너.베르디 작품의 출연진은 독일.이탈리아팀과 일본팀이 각각 더블 캐스팅해 공연할 예정입니다.한국에서도 많은 관객들이 와 개관을 축하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강숙=21세기가 눈앞에 다가왔습니다.세계의 중심이 과거와는달리 일본.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로 옮겨오고 있는 것같습니다.
도야마 선생은 세계 속의 아시아 음악의 미래를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도야마=제가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던 50년대에는 세계의중심이 유럽인 것처럼 느껴졌습니다.그러나 60년대 이후 유럽도상당히 미국화됐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음악도 많이 변했더군요.
그래서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진리를 깨달았 습니다.문화를 「삶의 방식」이라고 정의한다면 21세기에는 새로운 삶의 방식,즉 생활의 원리가 탄생되리라고 봅니다.조심스러운 말이지만아시아식(式) 생활방식이 세계를 지배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강숙=바쁘신 가운데도 의미있는 자리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서울에서 다시 뵙게 되기를 바랍니다.오는 4월 저희 학교에서 특강을 해주십사고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도야마=고맙습니다.이번 여름에 도호오케스트라 아카데미에도 꼭한번 들러 주세요.
이강숙=감사합니다.
[정리.사진=이장직 음악전문기자] ▶45년 도쿄제국대학 문학부 미학과 졸업 ▶57년 파리 소르본대학 미학과 졸업 ▶79년쇼팽 프랑스 문예훈장 ▶현재 도쿄문화회관 관장.도쿄 제2국립극장 예술감독 겸 운영재단 부이사장.도호(桐朋)음대 학장.일본근대음악관 관장.구사쓰음악제 음악감독.음악펜클럽회장.닛코(日興)증권 대표이사 ▶저서=『쇼팽』『고전과 환상』『도야마 가즈유키 저작집』등 ▶61년 서울대 음대 기악과 졸업 ▶75년 미 미시간주립대 음악교육학 박사 ▶77년 서울대 음대 교수 ▶81년 KBS교향악단 총감독 ▶87년 서울예술평론상 수상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장,계간 『낭만음악』 발행인,한국음악학연구회장,예술의 전당 비상임이사 ▶저서=『열린 음악의 세계』『한국음악학』『음악의 방법』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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