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학자의 인간 견문록]미래의 환경 변화 못 내다본 무학대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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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호 35면

요사이 며칠 내 허파꽈리들이 모두 화들짝 놀라고 있다. 서울의 공기가 10년 만에 가장 깨끗해 남산에서 인천 앞바다가 훤히 보인단다. 서울시가 22일 대기 중의 미세먼지 농도를 측정해 봤더니 12㎍으로 1995년 대기질을 측정하기 시작한 이래 가장 낮았다고 한다. 어느덧 이런 게 뉴스거리가 되는 세태가 심히 서글프긴 하지만 나는 오랜만에 서울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셔 보았다.

미국에서 돌아와 서울에 정착해 살기 시작한 1990년대 중반 어느 날 나는 불현듯 ‘새우숨’을 쉬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새우숨’이란 새우처럼 몸을 곱송그리고 잠깐씩 눈을 붙여 자는 잠을 일컫는 ‘새우잠’을 본떠 내가 만든 말이다. 가슴을 쫙 펴고 허파꽈리 깊숙이 숨을 들이켜는 게 아니라 짧게 작은 숨을 몰아 쉬는 걸 나는 ‘새우숨’이라고 표현한다. 확신하건대 나만 이러고 사는 것은 아닐 게다. 본인이 어떻게 숨쉬고 있는지 한번 주의 깊게 관찰해 보라.

내가 새우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서울을 벗어나자마자 거의 반사적으로 달라지는 나 자신의 숨쉬기 행동을 보고 깨달았다. 전공이 자연을 연구하는 것이다 보니 나는 대부분의 서울시민보다 훨씬 자주 이 복잡한 도시를 탈출할 기회를 얻는다. 내가 서울을 벗어났다는 사실은 내 몸이 먼저 안다. 나도 모르게 활짝 심호흡을 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서울의 미세먼지 농도는 뉴욕·런던·파리·도쿄 등 선진국 주요 도시에 비해 두세 배나 높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악이다. 멕시코시티는 오랫동안 서울과 악명의 자리다툼을 벌이다 안타깝게 밀려난 도시다. 그런가 하면 저 히말라야 산 중턱에 있는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도 대기오염 분야에서는 만만치 않은 경쟁 상대다. 서울·멕시코시티, 그리고 카트만두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모두 산들로 둘러싸인 분지도시라는 점이다.

서울지역 대기오염의 주 원인은 단연 자동차에서 배출되는 물질이다. 무려 300만 대의 자동차가 분진·황산화물·질소산화물·탄산수소·일산화탄소 등을 우리 얼굴에 마구 뿜어대리란 걸 무학대사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무학대사의 풍수지리는 오랑캐의 외침으로부터 도읍을 지키는 데 유리할 것만 알았지 오염된 공기가 산들에 둘러싸여 반영구적인 스모그를 형성할 줄은 미처 몰랐던 것이다.

미래의 환경 변화를 예측하지 못한 건 무학대사만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척추동물도 세상이 이렇게 변할 줄은 차마 몰랐다. 어류는 아가미로 숨을 쉰다. 그래서 좋지 않은 물질이 아가미에 끼더라도 덮개를 벌려 물로 씻어내면 된다. 어류가 뭍으로 올라오며 진화한 개구리·맹꽁이·두꺼비 등 양서류는 허파로도 일부 산소 교환을 하지만 피부로도 숨을 쉰다. 피부도 필요하면 씻어낼 수 있다. 하지만 파충류·조류·포유류 등 가슴 깊숙한 곳으로 공기를 끌어들인 다음 그곳에서 산소를 교환하는 방법을 택한 동물들은 미세먼지를 비롯한 온갖 오염물질이 대기를 이처럼 탁하게 만들 줄 미처 몰랐다. 일단 가슴 깊숙이 오염물질이 들어와 어딘가에 들러붙으면 일일이 허파꽈리들을 까뒤집어 씻어낼 수 없게 되리라는 걸 예상하지 못했다. 진화의 길이란 일단 걷고 나면 영원히 되돌아갈 수 없는 법이다.

지구 역사에 거의 맨 막둥이로 태어난 인간은 자동차라는 괴물을 창조해 지구의 대기환경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 다만 인간이 저지른 죄의 대가를 가장 크게 치르고 있는 장본인도 인간 자신이라는 점은 그래도 공평한 일이다. 어리석은 인간들은 그것도 모자라 자진해 그 끔찍한 담배 연기를 허파 구석구석으로 들이마신다. 자연계에서 유일하게 진화의 개념을 이해하는 동물이 저지르는 실수치곤 정말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다.

베이징은 지금 올림픽을 앞두고 대기오염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몇 년 전 베이징에서 관광버스를 타고 만리장성을 보러 간 적이 있다. 그때 관광안내원이 들려준 얘기가 잊히지 않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만리장성은 우주인들이 우주선에서도 알아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공물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젠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단다. 만리장성이 보이지 않는 한 내 눈에는 중국의 미래도 그리 밝게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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