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제작 SF 만화영화 "아마게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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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국내 기술을 총동원해 제작한 국산 만화영화 『아마게돈』(총감독 이현세)이 오늘 개봉된다.『아마게돈』은 자본구성에서부터 제작까지 각계 전문가들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만든 작품.그래서 비록 사운드 믹싱은 미국에서 했지만 국내 애니메이션 의 가능성을점쳐보는 기회로 관심을 끌었다.
그 결과는 일단 합격.몇군데 단조로운 장면과 오혜성을 제외한인물 캐릭터가 선명하지 않은 점외에는 별로 흠잡을 구석이 없다.초반 5분간을 장식하는 컴퓨터 그래픽은 상상력의 풍부함이나 기술적인 면에서 세계수준에 근접한다.스토리 구성 도 탄탄하고 장면도 군더더기 없이 빠르게 전개된다.
그러나 이 영화가 호평받는 이유는 이런 형식에서의 성취때문만이 아니다.『아마게돈』은 청소년용 만화의 단골소재인 SF에 성공적으로 시적 서정성을 불어넣음으로써 성인취향까지 만족시켜 준다. 표면적인 스토리는 이렇다.45억년전 우주.전지전능한 컴퓨터 「8988」과 「6666」은 지구와 외계에 각각 자신들의 복제세포인 생명체를 만든다.별의 수명이 다해 이주해야 할 운명에 처한 외계생명체 이드 군단은 지구를 침략한다.서기 2157년의 일이다.이때 남극의 해저에는 옛지구의 선조격인 엘카인들이이드의 침략을 저지할 계획을 세운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과거로 돌아가 초능력의 소유자인 델타소년 오혜성을 데려오는 것.1996년 한국의 국민학생이던 오혜성은 엘카인들에게 끌려간 뒤 우주전사로 재탄생한다.오혜성이 우주공간에서 이드인을 물리치는 얘기가 이 영화의 중심 축이다.
얼핏 보면 황당한 스토리다.그러나 막을 내릴때 까지 유치하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영화는 상상력이 과학을 넘어서는 길목마다 적합한 시적 상징을 던져놓는다.
예컨대 인간이 피조된 깜깜한 우주는 자궁의 이미지와 포개진다.45억년에 걸쳐 분신을 만드는 컴퓨터는 영속성에 대한 인간의갈망을 미세한 파장으로 전달한다.오혜성이 초능력을 얻기 위해 흡입하는 에너지가 풍만한 여인의 나신으로 그려지 는 점도 사랑의 힘을 환기시킨다.자신의 생명을 기계가 만든 사실을 알고 분노하는 케사로스의 모습은 기계문명에 대한 경고장처럼 들리기도 한다. 이같은 시적 상징들을 통해 이 영화는 공상의 공간에 삶의 우수를 옮겨놓는다.혼합색과 배경음악이 이 분위기를 일관되게끌어주는 점 또한 매력이다.시작과 함께 관객을 우주공간으로 끌어들였다 막이 내림과 동시에 관객을 조용히 자신의 내 면으로 돌려보내는 영화.『아마게돈』은 성인애니메이션의 가능성을 보여준첫 작품으로 평가받을만하다.
남재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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