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대통령은 법을 수호할 의지가 있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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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더 이상 촛불문화제가 아니다. 서울의 중심 광화문 일대가 밤마다 ‘촛불’이란 이름하에 사실상 무법천지다. 시위 군중이 “법대로”를 주장하는 경찰서장에게 “법이 어딨어, 지금”이라고 반박할 정도면 이미 이성의 한계를 넘어섰다. 그들은 법치 국가의 시민이길 거부하고 있다. 직접 피해를 본 광화문 인근 상인과 주민은 물론 선량한 국민도 참아내기 힘든 촛불의 변질이다. 그래서 국민들은 묻고 싶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정말로 법은 어디 갔느냐”라고.

시위의 성격이 변하고, 그에 따라 민심도 변했기에 정부의 대응도 달라져야 한다. 4월 말 촛불이 청계천에 모여들 당시만 해도 건강을 우려하는 민심이었다. 5월까지만 해도 촛불을 든 학생과 주부들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6월 들어서면서부터 각종 깃발이 주류를 이루기 시작했다. 깃발은 서로 다른 이해집단들이다. 쇠고기 민심에 편승해 자신들의 이익을 외치는 세력들이다.

특히 이명박 정부가 내세웠던 각종 개혁대상에 해당되는 집단이 많았다. 공기업 노조들이 트럭에 촛불을 싣고 와 ‘민영화 반대’라고 서명해주는 시민들에게 나눠주었다. 건강을 우려하던 시민들은 자신도 모르게 공기업 개혁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되어버렸다.

시위의 성격이 변질되면서 민심도 광장을 떠나기 시작했다. 소수는 과격해지게 마련이다. 6·10 이후 시위 참가자가 급격히 줄면서 행태가 과격해졌다. 시위를 주도하던 국민대책회의가 정부에 재협상을 ‘명령’하고, 이를 어기면 ‘정권 퇴진’이라고 협박하기에 이르렀다. 법이 보호해야 할 ‘의사표현의 자유’를 넘어섰다. 이때부터 정부는 법질서를 우롱하는 세력에 대해 단호한 조처를 취했어야 했다.

정부의 실기(失機)는 점점 더 심각한 법 경시 풍조를 가져왔다. 지난주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를 하고 미국과의 추가협상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면서 시위 규모는 더욱 줄었다. 촛불은 더욱 심하게 변질됐다. 망치남이 등장하고 복면이 늘어났다. 호텔 정문이 부숴지고, 취재하던 언론인이 폭행당하고, 이들을 지켜야 할 경찰이 시위대에 체포돼 폭행을 당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경찰이 극렬 주동자의 체포에 나서고, 검찰도 다음 주 대책회의를 소집한다고 한다. 서울을 무법천지로 방치하다 뒤늦게 나서고 있다. 한번 얕보인 권위는 회복하기 어렵다. 검·경의 엄격한 법 집행은 대통령의 의지에 크게 좌우된다. 대통령은 24일 국무회의에서 “불법폭력 시위에 엄격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무게가 실려 있지 않았다. 그러니 25, 26일 이틀간 시위대의 폭력이 극에 달했다. 경찰도 엉거주춤했다. 대통령의 이런 유약한 모습은 시위대의 조롱을 사고 국민의 신뢰를 잃을 뿐이다. 대통령이 직접 검·경 수뇌에게 단호한 법 집행을 하라고 격려한 적이 있는가?

불과 반 년 전 대통령을 뽑아주고, 불과 두어 달 전 한나라당에 압도적 지지를 보내준 민심은 지금 가슴을 치고 있다. 정말 이렇게 무능할 줄 몰랐다고…. 이런 정부에 남은 4년8개월 기대할 게 있느냐고…. 이제 민심은 쇠고기를 넘어 법질서 회복을 원하고 있다. 더 이상 실기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