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답사 1번지, 강진 기행> ② 영랑시인의 생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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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랑의 생가에서 시가 태어난 자리를 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 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우리나라 대표적 서정시인이자 민족 운동가인 영랑(永郞) 김윤식(金允植.1903-1950)의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이다. 모란의 시인답게 ‘영랑 생가’에는 붉은 모란꽃이 화사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전남 강진군 강진읍 남성리에 자리한 영랑 생가는 강진버스터미널에서 강진군청 담장을 끼고 이정표를 따라 10여 분만 걸어가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영랑생가로 들어서는 길목 한쪽에 이국적인 야자수와 2층의 하얀 양옥집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은 영랑 김윤식, 김현구 시인의 작품과 더불어 향토작가들의 시와 작품이 전시된 강진의 향토문화관. 영랑의 시 세계가 궁금하다면 이곳을 먼저 둘러봐도 좋다.

영랑 김윤식 시인은 1903년 1월 16일 이곳에서 5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하지만 1948년 선생이 서울로 이사하면서 이 집은 다른 사람들에게 전매됐다. 지금의 영랑생가는 강진군이 매입해 가족들의 고증을 얻어 1992년에 원형대로 복원한 것이다. 이후 2007년 10월에 국가지정문화재인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됐다.

싸리문 안으로 들어서자 넝쿨로 뒤덮인 돌담이 집 앞까지 이어진다. 돌담 바로 아래에는 영랑의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이 시비로 세워져 있다. 김영랑은 어쩌면 바로 이 돌담아래서 영감을 얻은 게 아닐까.

모란의 시인답게 영랑생가 입구 왼편에는 모란을 비롯해 다양한 화초가 심어진 정원이 있다. 그리고 생가 바로 앞에는 모란시비가 세워져 있다. 나도 모르게 시비의 글귀를 따라 읊조려본다.

대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서자 대나무 숲에 둘러싸인 안채가 단아한 자태를 드러낸다. 마당 왼쪽으로 문간채와 머슴방, 두개의 곳간과 뒷간이 있다. 안채의 오른쪽 옆으로는 대숲과 어우러진 장독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마당 한쪽의 새암, 마당 가득 심어져 있는 모란, 장독대 위의 동백나무 등 집안 곳곳에서 그의 작품의 배경이 됐던 장소와 시비를 찾는 재미도 쏠쏠하다. 뿐만 아니라 산책하는 내내 그의 작품을 낭독하는 소리가 나의 귀까지 즐겁게 하며 집안을 가득 메운다.

장독대를 지나면 사랑채가 보이는데, 영랑의 시가 거의 이곳에서 써졌다고 한다. 사랑채 안에는 영랑이 생전에 글 쓰던 모습을 본떠 만든 모형도 있다. 사실 김영랑은 일본에서 성악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부친으로 인해 영문학을 공부했다고 한다. 고향에서 살면서도 서울에서 음악회가 있으면 반드시 참석할 정도였다니 그의 음악에 대한 애정은 보통 그 이상인 듯하다.

돌담과 대나무, 갖가지 꽃과 식물로 둘러싸인 영랑생가는 영랑 시의 생가이기도 하다.

객원기자 최경애 (doongj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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