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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과 단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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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후쿠시마 사토시(福島智·45)는 생후 5개월 만에 안구염을 앓아 세 살 때 오른쪽 눈, 아홉 살 때는 왼쪽 눈마저 실명했다. 18세에는 청력까지 잃었다. 그는 “한순간 나 자신이 세상에서 사라져버린 느낌이었다”고 당시 상황을 기억한다. 곁에 있는 가족·친구들에게 내 생각을 전하고 마음을 나눌 수 없는 현실은 너무 힘들었다. “내 고통의 끝은 어디일까….” 18세 시청각 중복장애인의 일기는 분노와 절망으로 가득했다.

어머니는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던 아들의 손을 잡고 말을 걸었다. “사토시, 내 말 알아듣겠니?” 점자 타자기의 자판을 치듯 정해진 위치를 손가락으로 짚어 의사를 전달한 것이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네”라고 대답했다. 그가 또다시 세상과 소통한 순간이었다.

“내가 빛과 소리를 잃었을 때 그곳에는 말이 없었다. 그리고 세상이 없었다. 어둠과 적막 속에 혼자, 말없이 앉아 있었다. 내 손가락에 당신의 손가락이 닿았을 때 비로소 말이 태어났다… 내가 손가락으로 다시 대화할 때 그곳에는 우주가 생겨났고 나는 또다시 세상을 찾았다.”

후쿠시마는 ‘손가락 끝의 우주’라는 자작시를 통해 당시 심정을 표현했다. 그는 그 후 시청각장애인으론 처음으로 도쿄도립대 인문학부에 합격했고, 장애인 교육을 연구·실천하며 명문 도쿄(東京)대 조교수 자리에까지 올랐다. 마침내 그는 11일 자신의 경험을 분석한 논문으로 도쿄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난 주말 그는 한 방송사가 마련한 모교 방문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나 같으면 딱 죽고 싶었을 것”이라는 초등학교 6학년 후배의 질문에 그는 “그런 생각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그는 “사람과 사람의 대화는 물과 공기와도 같은 것”이라며 세상과 소통함으로써 나의 존재를 확인했고, 또 발전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가토 도모히로(加藤智大·25)는 일본 북부 아오모리(靑森)에서 우등생이었다. 교육열이 높은 부모의 지원 덕에 지역 명문 고등학교에 진학했지만 성적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대학에 진학하는 친구들과 달리 그는 자동차 기술 전문학교를 선택했다. 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다섯 곳의 일자리를 전전했다. 얼마 전까지 일하던 시즈오카(<9759>岡)현의 자동차 공장에서도 그는 구조조정의 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공부만 강요한 부모에 대한 불만, 터놓고 이야기할 친구도 애인도 없는 외로움, 하류 인생이라는 패배감,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불안심리….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게 낫다”는 자기비하는 곧 “성공하는 놈들은 다 죽어버려”라는 증오심으로 변했다. 그는 8일 렌터카 트럭으로 도쿄 아키하바라의 보행자천국에 돌진해 행인 3명을 치고 차에서 내려 닥치는 대로 사람들에게 칼을 휘둘렀다.

언제나 혼자였다는 가토의 유일한 말 상대는 휴대전화와 인터넷이었다. 현실에서 없는 친구를 찾아 그는 휴대전화 인터넷 게시판에 하루에 수십 건, 많을 때는 하루에 수백 건씩 글을 올렸다. 하지만 인터넷에서도 그에게 관심을 보이는 이는 적었다. 그가 게시판에 올린 글들은 “내가 하는 일은 일로 인정받지 못한다” “쓰레기보다 못한 목숨” 등 대부분 사회에 대한 분노와 자신을 부정하는 내용이었다.

후쿠시마는 가족과 친구들의 손가락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삶의 의지를 다졌다. 그러나 가토는 휴대전화 문자판을 누르며 자기만의 세상에 갇혀 지냈다. 사람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후쿠시마는 세상과의 끈을 이었지만, 가토는 그 의미를 외면한 채 스스로 소외의 길을 걸었다.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지만 사람들과 얼굴을 맞대고 체온을 느끼며 살아가는 후쿠시마. 꿈도 비전도 없이 가족·친구 등과 등지고 혼자 맴돌았던 가토. 일본 사회는 두 사람을 통해 타자(他者)와의 소통이 왜 소중한가를 새삼 일깨워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