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후 경제…정부 낙관에 전문가는 '글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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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가 끝나면 경제가 좀 나아지려나-'.

4월 15일 투표장으로 향하는 국민들의 가장 큰 바람일 것이다.

전체적인 지표 흐름만 보면 국내 경기는 이미 회복국면에 들어선 모습이다. 지난 2월 중 제조업 가동률은 83.5%로 완전 가동 수준에 접어든 가운데 수출은 무려 40%나 늘어나 3월까지 무역흑자가 벌써 70억달러를 넘었다. 서비스업 생산도 모처럼 2%대의 증가세를 보였다. 그러나 일반 국민은 "경기가 갈수록 더 나빠지는 느낌"이라고 말한다. 이른바 '경기의 양극화' 현상 때문이다. 요즘 국내 경기는 아랫목(수출 잘되는 대기업)만 절절 끓을 뿐, 윗목(내수 중심의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은 차디차기만 하다.

정부는 낙관론을 편다. 이헌재 경제부총리는 최근 "경제가 점차 정상 궤도를 찾아가고 있다"며 "올 경제성장률은 5%대(정부 전망치)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제 전문가들은 결코 낙관할 수 없는 변수들이 많다고 지적한다.

◆해외 변수=세계 경제의 견인차인 미국과 중국의 경기가 둔화한다면 어떨까. 그나마 잘나가던 수출이 주저앉고 내수마저 덩달아 더욱 침체될 수 있다.

아직 세계 경기 흐름을 크게 걱정할 상황은 아니라는 견해가 우세한 편이다. 미국은 지난 3월 중 신규 고용이 30만개나 늘어 '고용없는 성장'에서 벗어나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일각에선 미국 경제가 현재 정점에 도달해 머지않아 내리막길로 접어들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미국계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의 스티븐 로치 박사는 "미국 경제는 초저금리와 세금감면 정책에 의존한 소비로 호황을 누렸지만 과다한 가계부채와 부동산가격의 거품, 재정과 무역의 쌍둥이 적자 등으로 조만간 성장의 한계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중국 경제에 대해서도 "정부 스스로 경기과열을 걱정해 연착륙을 유도하기 시작했다"며 미국.중국 경제의 둔화는 한국 경제에 타격을 주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게다가 이라크 사태가 다시 악화하고 전세계적인 테러 위협이 끊이지 않으면서 원유 등 원자재값의 고공행진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미래에셋증권 리서치센터 류승선 연구위원은 "올 국내 경제성장률은 하반기로 갈수록 더 높아질 것이란 시장의 기대와 달리 상반기에 고점을 치고 하반기에 이보다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국내 경제 변수=가계대출 부실에 이어 자칫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에 대한 대출까지 부실화할지 여부가 가장 큰 걱정이다. 정부는 수출이 계속 좋아지면 아무래도 기업들이 투자를 재개할 것이고, 이는 내수 회복을 불러와 중소기업.서민 경제도 활기를 되찾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러나 불길한 조짐이 일부 나타나기 시작했다. 중소기업 대출의 연체율이 지난 2월 중 2.8%로 전월보다 0.7%포인트 급증했다. 전체 제조업 가동률은 83.5%로 높아졌지만, 중소기업 가동률은 67.1%로 오히려 떨어졌다.

LG경제연구원 신민영 연구위원은 "내수업종 중심의 중소기업들은 실적이 나빠지고 자금압박도 심해져 빚갚을 능력이 갈수록 떨어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지난 2002년 하반기 정부가 가계대출을 억제하기 시작하자 은행들은 앞다퉈 중소기업.자영업자 대출을 늘렸다"며 "가계대출에 이어 중소기업대출의 둑 마저 무너지면 경제는 다시 소용돌이에 빠져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치 변수=4.15 총선은 정치권의 판도를 뒤바꿀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경제 흐름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한양대 나성린 교수는 "만약 여당이 총선에서 보다 많은 의석을 얻어 국민통합과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국정운영의 근본 틀을 바꾼다면 투자와 소비가 살아나 경제 전체 흐름이 좋아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다수 의석을 무기로 반대 목소리를 무시한 채 진보적 정책을 추진한다면 경제는 더 깊은 수렁에 빠져들 것으로 그는 우려했다.

이화여대 전주성 교수는 "정부.여당은 총선을 끝내면 기업들이 5~10년 뒤를 믿고 투자할 수 있도록 분명한 기업 정책을 내놔야 한다"고 주문했다. 씨티그룹의 오석태 경제분석가는 "총선 이후 정책 초점은 성장을 통한 일자리 창출에 맞춰져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선 기업 친화적 정책들을 예측가능하고 일관성있게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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