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축구 ‘마법’ 다 풀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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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22일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남북한 축구경기에서 북한의 안영학이 넘어진 이청용을 일으켜 주고 있다(사진左). 오른쪽은 안정환이 태클로 넘어진 북한 차정혁의 등을 두드리며 일으켜 세우는 모습. [사진=특별취재반]

예견된 결과였으나 입맛은 썼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진출을 확정 지은 남북한이 또다시 무승부를 기록했다. 결과가 큰 의미를 갖는 건 아니었지만 한국 대표팀의 계속되는 무기력 플레이는 축구팬의 인내력을 시험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허정무 감독이 이끄는 축구 국가대표팀은 22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예선 3조 최종 6차전에서 북한과 득점 없이 비겼다. 이미 조 2위까지 주어지는 최종예선 진출권을 따낸 남북한은 나란히 3승3무(승점 12점)가 됐으나 한국이 골득실에서 3점이 앞서 조 1위를 차지했다. 23일 새벽(한국시간) 아시아지역 3차예선이 모두 끝났고, 남북한을 비롯해 최종예선에 오른 10개 팀이 2개 조로 나눠 홈앤드어웨이로 경기를 펼친다. 최종예선 조 추첨식은 한국시간으로 27일 오후 6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리며, 한국은 강호 호주를 피했지만 이란·사우디아라비아·일본 중 2팀과 같은 조에 속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 컨디션이 좋지 않은 유럽파 박지성(맨유)·이영표(토트넘)·설기현(풀럼)을 빼고, 5경기 연속 선발 출전한 김남일(고베)·오범석(사마라)·박주영(서울)도 선발 명단에 넣지 않았다. 허 감독은 장신(1m87㎝)의 고기구(전남)를 포스트에 놓고, 안정환(부산)과 이청용(서울)을 좌우 날개에 포진시켰다. 투르크메니스탄과의 5차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했던 김두현(웨스트브롬위치)은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로 공격을 조율하는 역할을 맡겼다. 북한은 ‘인민 루니’ 정대세를 중앙에, ‘북쪽의 박지성’ 홍영조를 왼쪽에 포진해 한국 문전을 노렸다.

한국은 활발한 측면 돌파에 이은 크로스로 고기구에게 찬스를 연결하는 작전을 노렸다. 그러나 스리백에다 좌우 미드필더까지 수비에 내려와 측면 공간을 아예 내주지 않은 북한의 저항에 부닥쳐 상대 골문을 여는 데 실패했다. 측면이 봉쇄되면서 중앙의 고기구는 고립됐다. 미드필더끼리의 날카로운 패스 연결이나 2선 침투도 보이지 않아 한국의 전반은 답답하고 무기력했다. 한국은 전반 12분 김두현의 스루패스를 받은 김정우(성남)가 페널티지역에서 수비 한 명을 제치고 슈팅했지만 빗맞아 골로 연결되지 못했다.

북한도 정대세가 중앙수비 이정수(수원)에게, 홍영조가 오른쪽 수비 최효진(포항)에게 철저하게 봉쇄되면서 공격의 활로를 찾지 못했다.

한국은 후반 14분 안정환을 빼고 박주영을 투입했다. 그러나 경기 흐름은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후반 22분 코너킥 상황에서 북한 수비수 이광천에게 결정적인 헤딩슛을 허용했으나 골키퍼 정성룡(성남)의 선방으로 간신히 실점을 모면했다.

허 감독은 후반 26분 김정우를 빼고 김남일을 투입했다. 그제야 경기 흐름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골 결정력 부족이라는 ‘고질병’이 문제였다. 후반 27분 박주영의 패스를 받은 김두현의 강슛은 골키퍼 정면으로 향했고, 1분 뒤 최효진의 기가 막힌 킬패스로 절호의 기회를 맞은 박주영의 슈팅은 하늘로 날았다. 후반 31분 이청용의 패스를 받은 오장은도 잔뜩 힘이 들어간 슈팅으로 찬스를 무산시켰다.  

정영재 기자

어린 선수 잘해 줘 … 무득점 아쉬워
◇허정무 한국 대표팀 감독

오랜만에 나온 선수도 많았는데 전체적으로 잘해 줬다. 다만 득점을 못한 점이 무척 아쉽다. 북한전을 통해 최종 예선을 앞두고 희망적인 면을 봤다. 나이 어린 김치우나 오장은 같은 선수들이 잘해 줘 다른 선수들과 경쟁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됐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최종 예선을 앞두고 수비에도 신경 써야 하고 스트라이커 쪽도 보완할 점이 많다.

수비, 역습 모두 기대대로 잘 돼
◇김정훈 북한 대표팀 감독

양팀 모두 자기 방식대로 경기를 잘했다. 우리 팀은 한국의 키 큰 선수를 활용한 공중공격을 짜임새 있는 수비로 잘 막았다. 수비에 치중하면서도 여러 차례 득점 기회를 잡았다. 역습도 기대대로 잘됐다. 우리는 상대를 끌어낸 뒤 홍영조와 정대세의 대결 속도에 근거한 전술로 득점을 노렸는데 좋은 장면이 있었다. 오늘 경험이 4단계(최종예선) 경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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