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권과 차별화 지나치면 화 자초할 수 있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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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호 39면

인사파동, 미국 쇠고기 수입 관련 부실 협상, 그리고 촛불시위로 홍역을 치른 이명박 정부가 청와대 수석비서진의 전면교체라는 인사쇄신 카드로 국면전환을 모색하고 있다. 새 정부 취임 117일 만의 일이다. 그러나 사람을 바꾼다고 국면이 반전되고 국정의 새로운 지평이 열리는 것은 아니다. 정책 전반에 걸친 재검토가 수반되어야 한다. 특히 외교안보 분야에서 이는 절실하다.

MB 독트린으로 표방되는 이명박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에는 큰 그림, 대전략(grand strategy)이 없다. 오로지 조건부적·반사적 정책, 임기응변적 대응, 그리고 과거회귀적 안주만이 있을 뿐이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개방·개혁을 통해 북 주민의 소득을 10년 내 3000달러로 만들어 준다는 ‘비핵·개방 3000’을 보자. 조건부의 대북정책 기조가 오히려 남북관계를 볼모로 잡고 MB 정부의 정책 행보에 걸림돌이 되고 있지 않은가.

이 대통령은 손상된 적이 없는 한·미동맹을 복원한다고 서둘러 미국을 방문해 쇠고기 시장 개방을 양보했다. 이는 오히려 한·미관계에 부정적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있다. 미국과의 ‘가치동맹’만 해도 그렇다. 이 대통령의 방중 한 달을 앞두고 중국이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가치동맹을 왜 크게 부각시켰는지 알 수 없다. 더구나 일본의 고이즈미와 아베 내각이 시도하다 실패한 외교구상을 뒤늦게 표방하고 나선 것은 실로 엇박자의 임기응변 외교라 아니할 수 없다. 그리고 새롭게 전개되고 있는 동북아 전략구도로 보아 한·미동맹 강화와 한·미·일 공조의 부활만으로 우리 안보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이 모든 것이 대전략이 없는 데서 기인한 것이라 하겠다. 대전략이라 함은 우리 국민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평화와 번영의 큰 그림을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우리를 둘러싼 안보 환경에 대한 냉철한 분석을 바탕으로 미래의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고 평화와 번영을 극대화할 수 있는 포괄적이고도 신축성 있는 대안의 구축을 전제로 한다. 수직적으로는 세계 체제와 지역 정세, 한반도 정세, 그리고 국내 정치를, 수평적으로는 군사·경제·자원·생태·인간안보 등을 종합적으로 아우를 수 있는 로드맵이 바로 대전략이다. 아직도 늦지 않았다. 발상의 전환을 통해 큰 그림을 그려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선 구호의 덫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반미·친북·좌파’ 정책의 타도를 기치로 대선에서 승리했다. 그러나 이러한 선거 구호가 바로 정책으로 반영될 수는 없는 일이다. 국가안보는 특정 정파의 전유물이 아닐 뿐 아니라 엄격한 현실 검증에 기초해야 하기 때문이다. 부시 행정부를 보자. 과도한 가치지향의 외교안보 정책은 결국 참담한 실패로 귀결되지 않았는가. 미국이라는 패권국도 그러할진대 한국과 같은 작은 나라에서 가치·이념 외교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이 점 유념하며 대승적 시각에서 국익 바탕의 실리외교를 전개해야 할 것이다.

또한 과거 정부와의 정책적 차별화를 시도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지만 그 도가 지나치면 화를 자초할 수 있다. ‘평화’ ‘화해협력’은 과거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가 즐겨 써왔던 정책 용어다. 그러나 MB 정부에서는 아예 이런 용어들을 찾아 볼 수 없다. 진보 진영의 용어라서 그렇다는 것이다. 다자주의, 다자안보협력은 세계적 추세이고 과거 정부도 이를 인정해 정책에 반영해 왔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이러한 역사적 추세를 거부하고 있다. 양자주의로 ‘위대한 아시아 시대’를 열어 나가고 세계 속의 한국으로 부상하겠다고 한다. 이는 잘못된 정책 포석이다. 더욱이 헌법적 정통성을 지닌 과거 정부가 북측과 합의해 놓은 6·15 공동선언과 10·4 공동선언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MB 정부의 태도는 더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과거 정부가 싫다고 그 정부가 사용하던 보편적 정책용어까지 배격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제 사람만 바꾸지 말고 외교안보 정책 전반에 대한 진솔한 재검토가 있어야 한다. 선거 구호와 편협한 정파주의에서 벗어나 국민적 공감대에 기초한 대전략을 세우고 우리 모두에게 희망찬 미래의 비전을 보여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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