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성 회장, 공식모임 갈 때도 주머니엔 디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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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호 16면

한국의 디지털 카메라 보급 대수는 220만 대로 추정된다. 폰 카메라까지 포함하면 그 열 배가 넘을지도 모른다. 카메라 없는 사람은 천연기념물 대접을 받아야 할 판이다. 골목마다 들어선 노래방 덕분에 온 국민이 가수가 되었듯이 카메라의 보급으로 이제 모두 사진작가가 되었다.

취미 넘어 경지에 오른 유명인사 5人

어느 저명인사가 알고 보니 사진 매니어라는 이야기는 더 이상 화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취미 수준을 넘어 경지에 올랐다면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목적 없이 산발적으로 사진을 찍거나 값비싼 카메라를 서랍 속에 모셔둔 이들에게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소’ 주제로 사진전 연 김진선 지사
공직자 중에서는 김진선(62) 강원도지사가 단연 눈에 띈다. 김 지사는 5월 28일부터 6월 3일까지 서울 인사동 경인미술관에서 첫 개인 사진전을 열어 만만찮은 실력을 공개했다. 그는 1974년 행정고시에 합격한 이래 관료로서 평생을 보냈다. 그러나 사진가의 이력도 만만치 않다. 고교(강원 북평고) 시절 친구들과 고향의 산과 계곡을 누비며 사진을 찍기 시작했고, 대학(동국대 행정학과) 시절에는 선배의 사진관을 출입하며 카메라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사진에 몰입한 것은 90년대 초 강릉시장 시절. “고향 동해에 갔었는데 냇가에서 송아지 한 마리가 순한 눈망울로 먼 산을 바라보는 모습을 봤습니다. 바로 이거다, 싶었지요. 그 후 ‘소’가 주제로 굳어졌습니다.” 산골 출신인 김 지사에게 소는 가족같이 친근했고, 우직하고 순수한 강원도 사람이나 다름없었다. 렌즈를 통해 보면 천태만상의 표정을 지닌 매력적인 피사체였다. 최근의 전시회 주제가 ‘소(牛)’인 것은 당연하다.

오랜 경력을 반영하듯 김 지사의 카메라들은 대부분 필름용이다. 롤라이플렉스, 라이카 M6와 R2, 니콘 F3와 F5 같은 전통의 명기. 하지만 그도 디지털의 거센 파도를 피하지 않는다. 최근 DSLR 모델 중 최고급에 속하는 니콘 D3를 마련했다. “앞으로는 강원도의 모든 마을을 사진과 글로 기록해 보고 싶습니다.” 선택과 집중. 김 지사가 작업하는 방식이다.

한국 야생화 기록하는 박용성 회장
박용성(68) 두산중공업 회장은 ‘재계의 사진작가’로 불린다.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부터 관심을 가졌던 사진이 취미를 넘어 삶의 일부분이 되었다.
정부측과의 모임 같은 묵직한 자리에 갈 때도 그의 양복 주머니에는 소형 디카가 들어 있기 일쑤다.

반가운 사람을 만나면 그의 카메라는 즉각 빛을 발하고, 그런 모습은 사진기자들에게 몇 차례 포착되었다. 거창한 것보다 일상이 피사체인 것이다. 2005년 박 회장은 자신의 사진으로 달력을 만들어 지인들에게 선물했다. 서울 남산과 강원도 평창, 백두산, 한라산에서 촬영한 피뿌리풀·솜다리·큰제비고깔 등 희귀 야생화 사진들로 꾸민 것이었다.

달력은 장기간에 걸친 야생화 촬영 작업의 성과를 보여 주는 것이기도 했다. “꽃을 촬영할 때 대부분의 사람은 예쁘게만 찍으려고 하잖아요. 저는 기록성을 중요시합니다. 이 땅에 어떤 꽃들이 피고 지는지 고스란히 찍어 남기는 것이지요.” 그는 요즘도 방방곡곡의 오지를 찾아다닌다.

박 회장은 얼리 어답터(신제품을 남보다 빨리 구입해 사용하는 사람)다. 최초의 전문가용 디지털 카메라라고 할 수 있는 니콘 D1을 출시를 기다렸다가 구입했다. 그 이후 나온 고성능 카메라도 대부분 그의 손을 거쳤는데 요즘 주로 쓰는 기종은 의외로 캐논 40D, 5D와 같은 중급기다. “비교적 보디가 가볍고 액정도 커서 편리합니다. 이 정도면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을 수 있죠.” 기업가답게 실용적이다.

‘사진+글’ 추구하는 소설가 성석제
작가 성석제(48)씨를 평할 때 자주 등장하는 단어는 ‘입담’이다. 대단한 이야기꾼이요, 글 솜씨가 좋다는 말이다. 그런 그가 『농담하는 카메라』라는 제목의 책을 세상에 내놨다. 글만으로도 얼마든지 독자를 웃기고 울리는 그가 사진을 많이 실은 책을 출판한 것이다. 사진 많이 쓰는 것이 출판계의 추세이긴 하지만 성씨의 경우는 오랜 내공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는 20여 년 전부터 열심히 카메라를 주물렀다. 새로운 물건은 반드시 써 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80년대만 해도 드물었던 줌 렌즈 카메라를 써 봤고 디지털 이후에는 ‘최소형’ ‘최대화소’를 자랑하는 상품에 관심을 보였다. 요즘 사용하는 기종은 캐논 400D. 성씨의 책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은 갈린다고 한다.

글만 실린 책에 비해 재미있다는 반응도 있고, 글이 가진 전통적인 힘과 영역이 흐려진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그의 새 책은 형식과 내용상 사진 없이는 성립하기 힘든 구성이다. 이미지의 중요성이 더해 가는 것이 추세라면 자신의 글에 어울리는 사진을 찍어내는 능력도 작가의 강력한 무기가 아닐까?

서른 넘어 사진 공부한 신현림 시인
시인 신현림(47)씨는 국문학도였지만 대학 시절부터 미술이론을 독학했다. 서른이 넘어 대학원에 진학해 사진을 공부한 것도 오랫동안 키워 온 이미지에 대한 사랑을 실현하는 과정이었다. 사진 개인전도 두 번이나 열었으니 ‘사진작가’라 불리는 것도 어색하지 않다. 신씨는 1996년 두 번째 시집 『세기말 블루스』를 내 ‘사진과 시가 잘 어울리는 파격적인 작업’이라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 “미학적으로 잘된 사진과 글은 시적이라 강렬하고 감동을 줄 수 있는 힘이 세다”고 그는 말한다.

오랫동안 사진을 해 왔으니 콘탁스 등의 필름 카메라도 있고 디지털은 캐논 5D, 400D를 사용한다. 하지만 자주 쓰는 것은 라이카의 소형 디카다. 간편하기 때문이란다. 그가 렌즈를 들이대는 것들은 ‘일상’이다. “내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은 일상의 가장 소박하고 친밀한 공간과 행위 속에 있다. 매일 반복되어 지루하고 답답한 일상을 조금 뒤틀기, 뒤집어 보기, 거꾸로 보기 등을 시도한다.”

디카와 잘 어울리는 모델, 소지섭
연예계에서 사진 매니어를 자처하는 이는 한둘이 아니다. 보아·김진표·비·이효리·윤은혜 등 톱스타들이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사진 찍기에 빠져들고 있다. 팬과의 소통을 위한 개인 홈페이지 운영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음은 물론이다. 탤런트 소지섭(31)씨는 그중에서도 성공적인 경우다. 인터넷 포털에 ‘소지섭의 포토 에세이’라는 방을 만들어 사진을 올릴 때만 해도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그 자신도 몰랐을 것이다.
잔잔한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사진들은 말수 적고 조용한 그를 닮아 네티즌의 감성을 자극했고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마침 광고 모델을 찾던 소니코리아 측이 제가 자사의 DSLR 브랜드인 알파시리즈를 쓴다는 소식을 듣고 TV광고 모델로 쓰고 싶다고 제의하더군요.” 경쟁자들은 김태희(올림푸스), 장동건(삼성), 비(니콘) 같은 톱스타들이었다. 하지만 ‘가장 잘 어울리는 디카 모델’ 조사에서 소지섭은 1위를 차지했다. 소비자가 인정하는 사진 실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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