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자동차 추가협상 요구해도 거절할 명분 약해졌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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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호 06면

-쇠고기 협상을 전체적으로 평가한다면
“한국 협상단은 13일 워싱턴으로 떠나기 전 ‘30개월 이상 쇠고기를 수입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항간에선 ‘그것만으로 성난 민심이 사그라지겠느냐’고 걱정했다. 우리 정부의 구상대로 ‘30개월 미만’으로 하되 광우병 특정위험물질(SRM) 두 개 부위만 수입 대상에서 빼내면 곤란한 상황이었다. 미국 도축장에 대한 승인·취소권도 우리가 가져야 한다는 주장이 많았다. 추가 협상에서 이런 시비를 상당 부분 잠재울 수 있는 결과를 얻어냈다.”

‘국제협상 전문가’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장

-우리 정부가 급한 불을 끄느라 협상을 졸속으로 진행했다는 비판이 많다.
“우리 정부는 당초 검역 주권을 확인하고 월령 제한 없이 SRM만 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촛불시위는 계속됐다.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6월 초부터 ‘30개월 이상’을 수입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버시바우 주한 미 대사가 말한 대로 미국 측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입장이었다. 여론이 워낙 나빠지자 우리 정부는 협박에 가까운 요구를 했다. 쇠고기 수입 재개 합의에도 불구하고 쇠고기를 수입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는 ‘협정 파기’를 뜻한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워싱턴에 날아가서도 협상은 쉽지 않았다. 미국은 한국을 모델로 삼아 다른 나라에도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촉구할 작정이었다. 하지만 우리 정부로선 ‘30개월 미만’을 보장하는 실효성 담보가 절박했다. 그래서 김 본부장이 회담 중간에 귀국하겠다고 초강수를 구사한 것이다. 일종의 벼랑 끝 전술이었다.”

-미국이 향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과정에서 추가협상을 요구할 가능성은.
“가능성이 굉장히 커졌다. 핵심 조항인 ‘30개월 이상’이 ‘30개월 미만’으로 바뀌지 않았느냐. 이는 미 행정부가 한·미 FTA 비준까지 내다보고 결정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민주당이 장악한 의회에서 비준안을 통과시키려면 자동차 분야의 추가협상이 필요할 수 있다. 우리가 쇠고기 추가협상을 한 마당에 이를 거부할 명분이 약해졌다.”

-그렇다면 자동차 분야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민주당 의원 중 일부는 한국산 자동차 수입량을 한국의 미국산 판매량과 연계하는 방식까지 주장한다. 그렇지만 자동차 협상의 틀을 완전히 바꾸기보다 미국산 자동차 수출을 늘릴 수 있는 조치를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 안전·환경 기준 완화, 3000㏄ 이상의 대형 승용차와 트럭에 대한 세제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를 가능성이 크다. 미국도 의회 반대를 명분으로 추가협상을 요구하거나, 자동차 말고 다른 품목을 들고 나올 수 있다.”

-향후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신인도와 대외 협상에 미칠 영향은.
“신인도가 상당히 훼손됐다. 협상을 타결해 놓고 재협상을 요구하는 사례는 별로 없다. 김대중 정부 시절 한·일 어업협정 체결 뒤 ‘쌍끌이 재협상’을 하다 황금 어장을 내줘야 했다. 자동차 수출대국인 우리에게 비관세 장벽을 완화하는 추가협상이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FTA 반대 세력의 반발을 촉발할 수 있다. 한국과의 협상이 논리 아닌 감성에 의존한다면 각국은 협상 테이블에서 우리를 더 압박할 수 있다. 한국 대표들의 신뢰도가 예전 같지 않을 것이다. 어떤 난관이 있어도 합의 사항을 지킨다는 전제 아래 협상하는 것 아니냐.”

-반성해야 할 부분이나 교훈이 있다면.
“쇠고기 협상을 끝낸 4월 18일부터 20일간 한국 정부의 존재는 어디에도 없었다. 쇠고기 협상은 한·미 FTA와 무관하다고 강변했다. 국민 정서에 미치는 전략적 고려도 없었고 사태 판단도 파편적이었다. 부처 간에 손발이 맞지 않고 협상 과정 관리도 미숙했다. 국민이 받아들일 준비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앞질러 갔다. 국내 유통 과정에서 쇠고기 원산지를 속이는 사례가 빈번하다. 이런 현실에서 ‘소비자가 안 먹으면 된다’고 발언하는 것은 위험하다. 모든 이해 당사자가 국내 협상 단계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고 정부가 적절히 통합·조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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