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火葬 문화의 허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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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망자의 시신을 처리하는 일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개인이나 가족뿐만 아니라 국가와 사회의 중대한 관심사였다. 과거에 죽음은 종교적으로 해석되었고, 이에 따라 장례의식과 시신처리 방법에서도 죽음을 종교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이 강조됐다. 근대화 과정에서 시신을 처리하는 일은 망자에 대한 슬픔을 표현하고 가족의 슬픔을 치유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환했다.

유교주의와 풍수지리 사상의 영향으로 오랫동안 우리 사회에서 주요 장법으로 자리잡아 왔던 매장은 현대에 들어 변용이 강요되고 있다. 과거 전통적인 미풍양속으로 양해되었던 남의 땅에 묘지를 쓰는 일은 오늘날 분쟁의 주원인이 되고 있다. 좁은 국토에서 질풍노도의 개발 유행이 토지가치를 급상승시키고 토지에 대한 소유의식을 강화시킨 결과이기도 하다. 한식이나 추석 때마다 어김없이 발생하는 교통난과 편리성을 추구하는 현대적 생활패턴으로 인해 도시로부터 격리된 조상의 묘를 일일이 찾아보기란 결코 쉽지 않다. 법과 제도도 지속 가능한 국토 활용을 위해 매장을 위한 토지의 사용에 많은 제한을 강화하고, 2001년부터 설치된 어떤 묘지도 최장 60년 이상 유지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결국 매장의 대안으로 화장이 증가해 수도권에서 화장률이 이미 50% 수준을 넘어섰다. 국민의 화장 선호도를 감안하면 화장률은 향후 더욱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우리의 화장문화를 면밀히 살펴보면 심각한 문제가 내재돼 있음을 알 수 있다. 화장을 적극적으로 유도, 묘지의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매장과 화장을 절충한 즉, 화장한 뒤 유골을 묘지형태의 공간에 안치하는 납골묘를 제도적으로 도입했다. 납골묘는 동일한 면적에 보다 많은 화장유골을 안치할 수 있어 공간적 효율성이 높으며 산재돼 있는 조상의 묘지들을 한곳에 모실 수 있어 관리가 편리하다는 장점으로 최근 설치가 급증하고 있다.

그러나 납골묘는 공급자의 지나친 영리 추구와 이용자의 과시욕(誇示慾)으로 인해 필요 이상으로 호화스럽고 대형화하고 있다. 전통적인 묘지는 무연화(無緣化) 과정을 거쳐 자연적으로 소멸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마찬가지로 납골묘도 언젠가 무연화될 것이나, 거대한 석물(石物)로 축조되어 반영구적으로 남을 것이다. 게다가 묘지와 달리 납골묘는 설치기간에 제한이 없다. 결국 묘지를 대신해 납골묘가 온 강산을 뒤덮을 것이다. 납골묘에 필요한 석물 채취도 자연환경을 심각하게 훼손할 것이다.

장법은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되며 쉽게 변하지 않는 속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 선택은 보다 신중하게 이뤄져야 할 것이다. 현대생활의 변용으로 인해 후손이 묘지든 납골묘든 조상의 안장장소를 정성스럽게 돌보는 기간은 길지 않을 것이며, 후손의 수가 줄어들고 있는 추이로 보아 그 기간은 점점 더 짧아질 것이다. 그렇다면 화장 후 유골을 후손이 자주, 쉽게 찾을 수 있는 경건한 곳에 묻거나 뿌리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한 곳으로는 영국에서와 같이 숲이나 나무를 예로 들 수 있다.

굳이 화장유골을 보관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설치한 집단납골당에 일정 기간만 안치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기왕 도입된 납골묘는 개인적으로 사후관리가 보다 용이한 공원묘지에 집합적으로 설치돼야 할 것이다. 납골묘는 메이지(明治)시대 전후 일본에서 사자(死者)를 주거공간에 편입하기 위해 도입한 것으로 다른 국가에서 찾아볼 수 없는 장법이다. 일본에서 납골묘가 사회적으로 큰 반향없이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집단화가 철저히 이뤄졌기 때문이다. 성묘에 나서거나 집에서 조상을 추모하는 한식날을 보내며 우리에게 적합한 장법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삼식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