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높이 맞는 신문 만들어 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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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적으로 문자를 읽지 않으려는 청소년들이 늘며 ‘살아있는 교과서’인 신문을 교육에 활용하는 나라들이 많아지고 있다. 사진은 본사 윤전기에서 신문이 인쇄되는 모습. [중앙포토]

읽고 쓰기가 안 되면 정보를 제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선진국들은 일찍이 청소년들의 문자 기피 현상을 우려해 NIE를 적극 권장해왔다. 올해는 우리나라에 NIE가 들어온 지 꼭 10년이 되는 해다. 그동안 NIE는 척박한 환경에서도 어느 정도 뿌리를 내려 올 학기부터 공교육에 편입되는 등 발전을 해왔다.

하지만 아직도 교육 당국과 신문업계의 인식 부족으로 선진국과는 대조적인 형편이다. 정작 수업에 필요한 신문은 교실과 멀리 있고, 내용 또한 학생들 눈높이와는 사뭇 다르다. 7일은 제48회 신문의 날이다.이를 계기로 교육에 필요한 신문은 어떤 모습인지 교사와 학생들의 생각을 들어 봤다. [편집자]

◇신문을 읽다 보면 어려운 낱말이 많이 나온다. 어머니께 여쭤봐도 모르시고, 사전을 찾아 봐도 어려워 이해가 잘 안 될 때가 있다.

신문에 나오는 어려운 낱말은 풀어줬으면 좋겠다. 낱말 풀이가 있으면 사전을 찾는 시간도 절약하고, 그 시간에 더 많은 기사를 읽을 수 있다.

또 어휘력도 늘고 신문과 쉽게 친해질 수 있을 것이다.

수업시간에 선생님께서 어려운 말로 설명하면 따분하고 재미가 없어 딴짓을 하게 되지만 쉬운 말로 설명하면 재미있어 귀를 기울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신문은 누구나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김은옥 학생기자(서울 석관초6)

◇우리 학교에선 어린이신문을 활용해 아침 자습을 한다. 하지만 어린이신문은 고학년들에겐 너무 쉽고 읽을 거리도 적다.

그래서 집에서 구독하는 신문을 자습시간에 공부하려고 스크랩하는데, 쉽게 이해하며 읽을 수 있는 기사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초등학생도 신문을 책처럼 가까이 두고 쉽게 볼 수 있도록 과학.문학.경제.예술.인물 등 여러 가지 주제별로 구성한 지면이 많았으면 좋겠다.

예를 들면 유물.유적지나 그날의 역사적 사건 등을 다룬 기사를 연재하면 매일 조금씩 재미있게 역사를 배울 수 있어 유익할 것이다.

이주현 학생기자(경기 분당초6)

◇신문 읽기에 아직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신문 크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신문을 멀리하는 학생들에게 크기까지 크니 불편하고 부담감을 주게 된다.

보통 소설책 읽는 것처럼 훌훌 넘겨 볼 수 있을 정도로 내용이 쉽지 않은 데다 크기마저 부담스러우니 신문과 쉽게 친해질 리 없다. 덩치가 작은 학생들은 팔을 쫙 펴서 읽느라 금방 지치기도 한다.

지하철 등 공공장소에서도 신문을 펼쳐들고 읽다 보면 주위 사람들에게 불편을 끼칠 수 있다.

학생들을 신문과 친하게 하려면 먼저 크기부터 줄여야 한다.

박보경 학생기자(울산 서여중1)

◇우리 반에서 신문을 매일 읽는 학생은 다섯이 채 안 된다. 신문은 어른들만 보는 것이라는 고정관념 때문이다.

깨알 같은 글씨에 어려운 말로 쓰인 경제, 학생들에겐 별로 필요하지 않은데 지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정치 소식 등이 모두 신문을 읽지 않게 하는 요인들이다.

대다수 신문의 경우 정치면이 앞에 오고, 큰 문제가 생기면 평소에도 많은 정치면이 더 늘어난다. 그러면 다른 기사들은 뒤로 밀려 읽히지 않게 된다. 정치.사회적으로 큰 문제는 지면을 따로 마련해 그곳으로 옮겨 다른 기사도 빛을 발하도록 했으면 좋겠다.

박진수 학생기자(충북 충일중1)

◇신문을 읽다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오기 일쑤다. 어둡고 우울한 소식투성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면 귀퉁이에 조그맣게 실린 미담 기사 하나에도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하다.

신문은 세상을 보는 창이라고 한다.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역할 못지않게 건강함을 잃지 않는 모습을 소개하는 것도 신문의 중요한 역할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알진 못하지만 세상엔 선행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름답게 살아가는 사람과 희망을 주는 소식이 신문에 많이 실리면 이웃을 한번 더 돌아보고, 그들을 닮기 위해 노력할 것 아닌가.

김연희 학생기자(서울 진명여고3)

◇신문은 사람들의 눈과 귀 역할을 해준다.

따라서 소수의 의견을 포함한 다양하고 균형 잡힌 시각을 담을 수 있어야 한다.

예컨대 한-칠레 FTA 협정에 대해 많은 신문이 국민경제 전체에 미치는 긍정적인 면만 부각해 소수자인 농민 의견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 그래서 대다수 사람들은 피해를 보는 농민의 입장을 잘 이해하지 못했고, 그들은 생존을 위해 시위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나의 문제에 관해 다수 의견 못지않게 소수 의견도 중요하다. 다양한 의견과 시각을 고려해 사실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송대진 학생기자(경기 광명북고3)

*** 교사들 생각은
자극적 내용 피하고 중립적으로 보도를

신문을 수업에 활용하려는 교사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신문을 날것 그대로 교재로 삼기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먼저 지나치게 자극적이거나 외설적인 내용이 발견된다. 어법에 맞지 않는 표현과 품위를 잃은 언어가 사용되기도 한다.

학생들이 편견 없이 세상을 보고 다양한 시각을 인정하며 건전한 비판력을 기를 수 있도록 하는 자양분으로서의 신문은 어떤 조건을 갖춰야 할까?

객관적이고 가치 중립적인 보도를 해야 함은 물론이다. 편파 보도가 일시적으로 독자들의 호응을 얻을지 모르지만 학생들에겐 치유하기 어려운 왜곡된 가치관을 심어줄 수 있다. 교육 현장에서 NIE에 대한 반응이 뜨겁지만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시각이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반 광고지와 변별이 안 되고 가치 편향적이며 흑백논리로 일관하는 자세, 정정보도엔 인색한 모습 등이 신문의 교실 진입을 가로막는 것이다. 사회의 어두운 부분만 꼬집기보다는 용기와 희망을 주는 사례들을 많이 보여줄 필요도 있다. 희망이 없는 뉴스를 보면 우울해하고, 역경을 이기거나 이웃에게 베푸는 사람들의 소식을 만나면 웃음짓는 게 학생들이다. 그런 면에서 신문은 훌륭한 인성교육 교재다.

신문은 또 학생들 가까이에 있어야 한다. 휴대전화처럼 언제 어디서든 접할 수 있도록 교실에 신문이 제공돼야 한다. 그래야 쉬는 시간에 학생들의 기분을 전환해 주는 존재가 되고, 수업시간에 활용할 수도 있다.

신문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어느 정도나 될까 수업시간에 학생들과 따져봤다. 자장면 덮개에서부터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의 근원을 배우는 일까지 아흔 가지가 넘었다.

학생들이 신문을 만드는 사람들보다 신문의 가치를 더 느끼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신봉철(인천 불로중 교사).이규철(안양 성문고 교사).이미화(광주 대광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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