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근 첩보원의 외근 좌충우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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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밀첩보조직의 요원이라고 다들 007시리즈의 제임스 본드나 ‘본 아이덴티티’의 제이슨 본 같지만은 않을 터. ‘겟 스마트’는 전형적인 특수요원과는 거리가 먼 주인공을 내세운 코미디 액션물이다. 1960년대 멜 브룩스가 만들었던 미국 TV시리즈가 원작이라는데, 이 시리즈를 본 바 없는 국내 관객들에게는 별 도움 안 되는 정보다. 굳이 족보를 따지자면 ‘총알 탄 사나이’시리즈나 미스터 빈 주연의 ‘자니 잉글리쉬’가 가까울 듯싶다. 다만 ‘겟 스마트’는 이들 영화처럼 노골적인 패러디가 아니라 자체적인 줄거리가 있는 코미디다.

주인공 맥스웰 스마트(스티브 카렐)는 첩보조직 ‘컨트롤’에서 정보 분석가로 일하는 내근직 요원이다. ‘스마트’라는 이름처럼 머리는 똑똑할지 몰라도 액션은커녕 일상생활 역시 요령부득이다. 분석 보고서를 워낙 방대한 분량으로 만드는 탓에 정작 조직 내 누구도 그 내용을 주의 깊게 읽지 않는다.

스마트의 오랜 꿈은 내근직을 벗어나 첩보조직의 꽃인 현장요원이 되는 것. 조직의 본부가 악당조직 ‘카오스’에게 급습당하고, 전 세계 위장요원들의 신분이 노출되는 긴급상황이 벌어지면서 스마트는 현장요원으로 발탁된다. 최근 전면적인 성형수술을 받아 신분이 노출되지 않은 에이전트99(앤 헤서웨이)가 스마트와 짝을 이루게 된다. 미모는 물론이고 액션도 뛰어난 에이전트99는 책상물림 출신의 늦깎이 스마트를 처음부터 못마땅하게 여긴다.

주연 배우 스티브 카렐은 코미디언임에도 지극히 평범한 외모가 단연 장점이다. 그가 등장한 것만으로도 웃어 줘야 한다는 식의 강박관념을 크게 덜어준다. 현장 경험이 전무한 스마트 요원이 좌충우돌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은 포복절도할 수준은 아니라도 허허실실의 웃음으로 적당한 즐거움을 안겨준다. 신개발 무기들의 엉뚱한 성능 역시 미소와 실소를 고루 자아내며 코미디를 돕는다.

실전에는 영 서툴지만 스마트에게는 인간적인 장점이 있다. 현장요원 시험에 통과하기 위해 그동안 각고의 노력을 통해 막대한 체중을 감량한 터. 과체중의 설움을 누구보다 잘 아는 스마트는 임무를 위해 잠입한 파티장에서도 말라깽이 아가씨들을 제치고 거구의 여성에게 춤을 청해 고난도 스텝을 연출한다. 그동안 감청을 하면서 악당의 사생활 고민까지 꼼꼼히 파악해 둔 덕분에 스마트는 위기의 순간, 적을 우리 편으로 만드는 놀라운 기지를 발휘하기도 한다. 이런 스마트에게 에이전트99도 점차 호감을 품게 된다.

이런 영화에 정교한 줄거리를 주문하는 것이 좀 무리이기는 하지만 스마트가 이중첩자라는 누명을 쓰게 되는 후반부의 전개는 억지로 연결된다는 인상이 짙다. 이렇게까지 무리수를 두는 이유는 한결 규모 있는 액션을 등장시키기 위해서다. 미국 대통령이 참석하는 공연장에 폭탄이 설치됐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스마트는 본격적인 악당 추격에 나선다. ‘더 록’이라는 별명의 레슬러에서 이제는 배우로 변신한 드웨인 존스가 근육질 현장요원 에이전트23으로 등장해 후반부의 액션에 가세한다.

코미디와 액션을 고루 버무렸지만 ‘겟 스마트’의 맛은 어중간하다. 스마트의 독특한 캐릭터에 기반한 코미디에 더 힘을 싣는 편이 나았을 성싶다. 이들이 상대하는 악당조직 ‘컨트롤’은 세계 정복을 꿈꾼다는 것 외에는 별다른 존재감이 없다. 기존의 첩보영화들도 소련의 해체 이후 새로운 적을 찾기 위해 한참이나 헤맸던 마당에, 이렇게 평범한 적과의 대결은 암만 코미디라고 해도 땅 짚고 헤엄치기식의 ‘맹숭맹숭’한 맛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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