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무등산 폭격기 선동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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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한국 야구사상 가장 위대한 투수.
「무등산 폭격기」선동열(32.해태)이 더 넓은 세상을 향해 요란한 굉음을 울리며 이륙을 시작했다.
이미 현지 언론은 선동열의 역할을 메이저리그에 진출해 일본 열풍을 일으킨 노모와 비교했고 올해 5위에 그친 주니치는 선동열의 입단으로 내년 시즌 강력한 우승후보로 떠오르고 있다.
광주 송정동국민학교 4학년때 야구를 시작한 이래 23년만이다.더이상 이룰 것이 없어 국내무대를 떠나는 「무등산 폭격기」신화의 출발은 어디인가.
「형의 죽음」이 첫번째 배경이 된다.선동열은 5세위인 형 「형주」가 야구선수였던 덕분에 어릴때부터 자연스럽게 야구와 접할수 있었다.국민학교 4학년때는 정식 선수로 유니폼을 입었다.
아버지 선판규씨는 송정서국민학교가 야구부를 해체하자 선동열을야구부가 있는 동국민학교로 전학시킬 정도로 야구광이었다.아버지는 두 아들중 한명은 반드시 야구선수로 만들겠다는 결심을 하고있었다.결국 야구선수로 선택받은 것은 선동열이 었다.그러나 선동열이 중학교 1학년때 형인 형주가 백혈병으로 사망하자 선판규씨는 모든 희망을 하나밖에 남지 않은 둘째아들에게 걸다시피했다. 학교 훈련을 마친뒤에도 선동열이 동료들과 간단한 타격이나 투구훈련을 할 수 있는 시설을 앞마당에 만들어주기도 했다.
「바짓바람」으로 불리기도 했던 선판규씨의 이같은 억척스러움은훗날 선동열이 최고투수로 자라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됐다.
두번째는 방수원과의 만남과 간단한 타격이나 투구훈련을 할 수있는 시설을 앞마당에 만들어주기도 했다.
「바짓바람」으로 불리기도 했던 선판규씨의 이같은 억척스러움은훗날 선동열이 최고투수로 자라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됐다.
또 병상에 누워 자신의 훈련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유일한 즐거움이었던 형의 죽음은 선동열에게 「최고선수가 돼야 한다」는 각오를 심어주었다.
두번째는 방수원과의 만남.
포크볼을 못던지는 선동열에게 일본프로야구에서도 통할 수 있는최고의 무기는 역시 슬라이더.광주일고 선배 방수원은 선동열이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때 처음으로 그에게 슬라이더를 가르쳐준 스승이었다.그러나 프로에서 다시 만났을때 방수원 은 오히려 선동열에게 슬라이더 던지는 법을 배워야 할 정도로 완벽하게 자기것으로 소화해냈다.
91년 한일 슈퍼게임에서 선동열의 공을 받아주던 일본 포수는「세계 최고의 슬라이더」라고 선동열의 슬라이더를 극찬하기도 했다. 세번째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신체와 두뇌.
선동열은 투수로는 치명적일 정도로 손가락이 짧다.포크볼 등 다양한 변화구를 던지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대신 선동열은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정도의 유연한 근육을 지니고 있다.184㎝.90㎏의 거구가 마치 생고무처럼 이리저리 휘어지 고 통통 튀는 탄력을 자랑한다.30대 중반을 바라보는 나이에 무리없이 시속 155㎞에 가까운 빠른 공을 던질 수 있는 비결이 여기에 있다.거기에 명석한 두뇌를 지녀 위기조절이나 볼 배합에서 발군의 능력을 발휘했다.
형주가 사망한뒤 선판규씨는 자신의 욕심때문에 공부에도 소질을보이던 선동열의 장래를 그르칠까봐 많은 고민을 했다고 한다.
「국보급」이라던 선동열의 가치는 스카우트에 실패한 요미우리가제시한 8억엔(이적료 포함 약60억원)이라는 엄청난 스카우트머니로 유추해 볼 수 있다.이 돈은 메이저리그 출신으로 최고액(약24억원)을 받은 케빈 미첼보다 높은 액수였던 것이다.「무등산 폭격기」의 한국신화는 일단 막을 내린다.그러나 더넓은 세상인 일본프로야구에서 「한국산 폭격기」는 새로운 신화를 만들어 나갈 것이다.
▶생년월일:1963년1월10일 ▶체격:184㎝,90㎏ ▶학교:광주 송정동국교(75년)~광주 무등중(78년)~광주일고(81년)~고려대(85년) ▶경력:국가대표(81년)~해태(85년)~주니치(96년) ▶가족사항:부인 김현미씨와 1남1녀 ▶프로주요수상:86.89.90년 페넌트레이스 MVP,86.88~91.93년 골든글러브,86.89~91년 최다승,85~91.93년 방어율 1위,86.88~91년 탈삼진 1위,93.95년 구원부문1위,87.89~91년 승률1위 ▶프로통산성적:367경기에 출장,146승(29완봉승)132세이브 40패,방어율 1.20 글=김홍식 사진=장남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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