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해외 칼럼

식량·에너지 위기의 진정한 해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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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지구촌 곳곳에서 치솟는 유가와 곡물가에 항의하는 시위가 잇따르고 있다. 세계 경제가 침체에 접어들며 빈곤층, 심지어 중산층까지도 소득 감소에 직면했다. 정치인들은 유권자들의 요구에 대처하고 싶지만 어찌 할 바를 모르는 상태다. 미국 대선에 뛰어들었던 후보들 중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민주)과 존 매케인 상원의원(공화)은 여름철 한시적이라도 유류세를 중단하자는 손쉬운 해법을 내놓았다.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민주)만이 유류세 중단은 석유에 대한 수요만 증가시킬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만약 힐러리와 매케인이 틀렸다면 다른 해법은 뭔가.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그는 부유층에 대한 감세 조치가 각종 경제 문제들을 해결해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감세로 탄력을 받아 경제가 성장하면 복지 등 기타 부문에까지 이익이 돌아갈 것이란 얘기였다. 그러나 이는 실현되지 않았다. 감세가 저축을 촉진하지 못했다. 오히려 미국 내 가계 저축은 바닥까지 떨어졌다. 고용을 활성화할 것이란 기대도 무산돼 취업률은 1990년대보다 낮은 수준이다. 경제 성장은 단지 소수 상층부의 배만 불리고 말았다.

생산성이 얼마간 증가하긴 했으나, 월가의 금융혁신 때문은 아니다. 첨단 금융기법들은 투자 위험을 오히려 증가시켰다. 그 기법들은 너무 불투명하고 복잡해서 월가의 금융기관들이나 신용평가회사들조차 내용을 파악할 수가 없었다. 금융업계는 보통 사람들이 투자 위험을 관리하도록 도와줄 금융상품을 내놓지 못했다. 그 결과 수백만 명의 미국인이 집과 평생에 걸쳐 모아온 금융자산을 잃어버릴 위기에 처할 전망이다.

미국 성공신화의 핵심은 실리콘 밸리로 상징되는 기술이다. 그렇다고 그 주역인 과학·기술자들과 벤처 캐피털 회사들이 부동산 거품으로 미국 경제가 흥청망청할 때 가장 큰 보상을 받은 건 아니다. 이들의 노력은 금융시장에서 벌어진 머니 게임에 가려 빛을 잃었다.

세계는 성장동력의 근본에 대해 재고해봐야 한다. 만약 경제 성장이 부동산이나 금융시장의 투기가 아니라 과학기술의 진보에 달려 있다면 현재의 조세체계는 전면 개편돼야 한다. 왜 월가 ‘도박판’에서 한몫 잡은 사람들이 다른 방식으로 돈을 번 사람들에 비해 낮은 세율을 적용받는가. 자본 이익에 대해서도 최소한 일반 소득세율 수준의 세금이 매겨져야 한다. 떼돈을 번 석유 및 가스 회사에 대해서도 추가 세금이 부과돼야 할 것이다.

대부분 국가에서 불평등이 악화되는 상황을 고려해볼 때, 세계화와 기술혁신에 뒤처져 설 땅을 잃은 사람들을 돕기 위해 상대적으로 좋은 성과를 낸 이들에게 고율의 세금을 매기는 것은 타당하다. 이는 비등하는 곡물가와 유가 때문에 발생한 갈등을 완화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오늘날의 위기를 촉발한 요인은 두 가지다. 우선 이라크전은 저비용으로 석유 생산이 가능한 중동지역 정세를 불안하게 함으로써 유가 급등을 초래했다. 대체에너지는 식량공급 체계를 왜곡했다는 점에서 문제를 일으켰다. 옥수수를 재료로 한 에탄올에 대해 미국이 보조금을 지급한 것은 지구온난화 해소보다 에탄올 생산자들의 금고를 채우는 데 더 많이 기여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의 막대한 농업보조금은 개발도상국의 농업 기반을 약화시켰다. 농업 부문의 개발원조 규모는 국제원조 총액의 17%에서 3%로 떨어진 상태다.

부국들은 왜곡된 농업 및 에너지 정책을 바로잡고, 빈국들이 농업 생산력을 향상시킬 수 있게 도와야 한다. 이와 함께 지금껏 우리가 공짜인 양 펑펑 써왔던 소중한 자원, 즉 물과 공기에 대해서도 새로운 소비·생산 양식을 도입할 때 자원위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조셉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
정리=신예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