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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문학이 출판계 ‘구원투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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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이른바 ‘고전’이 출판계의 오랜 불황을 타개하는 돌파구가 될 수 있을까. 지난 10년간 민음사가 평정하고 있었던 세계문학전집 시장에 새 바람이 불고 있다. ‘펭귄클래식’ 한국어판 시리즈가 1차분을 내놓은 데 이어, 1959년 국내 최초의 문학전집을 출간했던 을유문화사도 50년 만에 세계문학전집을 다시 선보였다.

그 첫째 배경은 물론 대입 논술일 터다. 여기에다 고전 출간이 저작권료 부담이 적다는 점도 한몫 한다. 공격적인 투자가 망설여지는 출판 불황기에 고전만큼 안전한 분야가 없기 때문이다. 민음사가 세계문학전집을 처음 내놓은 때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이었다.

◇출판명가의 부활=13일 ‘을유세계문학전집’ 1∼3권이 출간됐다. ‘독일 문학의 교황’으로 꼽히는 소설가 토마스 만의 『마의 산』1·2권과 영국 희곡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리어왕·멕베스』다. 59년부터 시작, 75년 100권으로 완간된 을유세계문학전집이 부활한 셈이다.

을유문화사 정상준 상무는 “법고창신(法古創新·옛것을 본받아 새것을 창조한다)의 자세로 1959년판 을유세계문학전집을 계승하겠다”며 “앞으로 20년 동안 300권을 출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번 전집의 판형은 59년판 그대로지만, 책 목록을 새로 짰고 번역도 새로 했다. 특히 번역에 신경을 썼다. 전집 편집위원과 해당 언어권의 다른 번역자, 출판사 편집자가 번역 원고를 3중으로 검토했다. ‘논문에도 인용할 수 있는 수준의 엄밀한 번역’이 되도록 한다는 게 출판사 측의 설명이다.

◇’펭귄 클래식’의 도전=세계적인 출판사 펭귄그룹이 출판사 웅진씽크빅의 임프린트 ‘문학에디션 뿔’과 손잡고 펭귄클래식 한국어판을 지난달 내놓았다. 5년 안에 250권을 출간하겠다는 것이 합작출판사 ‘펭귄클래식코리아’의 목표다. 1차분으로 나온 펭귀 클래식 한국어판은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지킬 박사와 하이드』,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 1,2』, 프란츠 카프카의 『성』 등 10종 11권이다.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의 『인상과 풍경』을 제외하고는 모두 이미 국내 여러 출판사에서 번역본을 내놓은 책들이다.

출판사 측은 펭귄클래식의 차별화 전략으로 “이 시대 최고의 석학·작가들의 해설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점”을 꼽았다. “해당 작품에서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연구자와 현대 주요 작가들이 직접 집필한 서문을 함께 실어 전문성을 더했다”는 것이다.

◇고전의 상업화 타진=출판사 문학동네에서도 세계문학전집이 나올 움직임이다. 출판사 측은 “올 하반기 중 1차분 10권 정도를 출간할 계획”이라며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책들을 다수 포함시켰다”고 밝혔다.

이렇게 출판계가 문학전집에 주목하는 배경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이란 성공 모델이 있다. 현재 180권까지 출간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은 지난 10년간 총 500만 부가 팔린 ‘히트 상품’이다. 98년 첫 출간 당시 저작권 계약을 정식으로 하고, 영역본이나 일역본의 중역에서 벗어나 정본을 번역한다는 점이 화제가 됐다.

◇원전(原典) 읽기의 매력=고전은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충실하게 담고 있다. 세상사의 문제에 대한 근원적 처방책을 제시한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인류와 문명의 공존을 탐색하는 고전은 무한경쟁 시대의 각박한 마음을 달래주는 구실을 한다”며 “원전(原典)의 잇단 출간은 최근 출판계의 주요 트렌드인 ‘고전 다이제스트서’를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현행 저작권법상 작가 사후 50년까지만 저작권료를 지불하면 된다는 점도 고전 출간의 상업적 매력으로 꼽힌다. 문학 관련 한 출판사 대표는 “신간 베스트셀러의 경우 선인세가 억대까지 치솟는 현실이다 보니 작품성이 검증되고, 출간 부담도 적은 고전 목록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된다”고 밝혔다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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