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up] 50돌 교보생명 신창재 회장 …‘내실경영맨’ 이젠 성장을 말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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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생명이 8월로 창립 50주년을 맞는다. 망하지 않고, 주인이 바뀌지도 않고 50년간 이름을 그대로 지켜온 금융사는 흔치 않다. 교보생명은 1997년 외환위기 와중에서 2조4000억원의 자기자본을 까먹는 어려움도 겪었지만 2001년 이후 꾸준한 이익을 내면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교보생명을 이끌고 있는 신창재 회장을 12일 서울 세종로 교보빌딩 3층 집무실에서 만났다. 신 회장은 “지금까지 쌓은 내실을 바탕으로 ‘좋은 성장’을 하겠다”고 말했다.

교보생명은 외환위기 이후 불필요한 영업조직을 축소하는 등 외형 확장보다는 수익성 위주의 경영을 해 왔다. 신 회장은 “앞으로는 지금까지 다진 내실을 기반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2015년까지 회사 자산을 지금의 두 배인 100조원으로 키우고, 연간 1조원의 당기순이익을 내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와 함께 중국 시장 진출도 추진할 계획이라고 한다. 다만 서두르거나 급하게 하진 않겠다고 한다. 신 회장은 중국 진출 얘기를 꺼내면서 ‘아생연후살타(我生然後殺他·내 돌을 먼저 살리고 남의 돌을 죽인다)’라는 바둑 격언을 꺼냈다. 그는 “아직 국내 보험사가 외국계에 비해 충분한 경쟁력을 확보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해외 경영을 뒷받침할 인재를 확보한 뒤 틈새 시장을 적절히 공략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좋은 성장’은 고객·직원·투자자 등 이해 관계자에게 도움이 되는 성장이다.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은 바로 이익이라고 한다. 신 회장은 “일부 시민단체에선 기업이 이익을 내는 것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지만 기업이 여러 이해 관계자를 만족시키기 위해선 반드시 이익을 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야만 고객에게 더 좋은 서비스를 하고, 직원의 봉급을 올려주고, 세금도 많이 내고, 활발한 사회 공헌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신 회장은 “이익이 나야만 이해 관계자와 함께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며 “이익을 못 내는 기업이 사회 공헌을 한다는 것은 죄악”이라고 단언했다.

교보생명은 최근 계열사인 교보증권의 매각 여부를 검토한다는 공시를 했다. 이에 대해 신 회장은 “공시 조회가 들어왔기 때문에 답변을 한 것”이라며 “증권을 꼭 판다기보다 여러 가능성을 검토하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내년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을 앞두고 많은 기업이 증권업에 진출하고 있는데, 이미 가지고 있는 증권사를 놓고 고민하는 이유가 뭐냐는 질문엔 “그냥 거느리고 있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답했다. 그는 “중위권인 교보증권이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유능한 경영자를 영입하든지, 능력 있는 파트너와 합작을 해야 한다”며 “이게 안 되면 매각도 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신 회장은 “새로운 기회가 온다는 것은 돈을 벌 수도 있지만 까먹을 위험도 있다는 뜻”이라며 “솔직히 보험만큼 증권업을 잘 알지 못한다”는 속내도 털어놨다. 교보생명의 상장에 대해선 “지난해 증자(3700억원)를 했으니 당장 자본 확충을 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당분간 상장을 할 시급한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교보생명의 개인 지분율(37.3%)을 높일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엔 “돈이 없다”고 웃으며 답했다.

신 회장은 독특한 감성 경영을 한다. 99년부터 매월 우수 직원과 함께 밥을 먹으면서 칭찬해 주는 ‘칭찬 점심’을 100차례 넘게 했다. 지난달 제주도에서 연도대상 시상식을 했을 땐 과자를 직접 구워 보험설계사들에게 나눠 줬다. 또 임원들과 함께 합창단을 조직해 노래도 불렀다.

신 회장은 “조직원들이 말을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며 “리더가 딱딱한 틀을 벗고 친근하게 다가가면 소통을 가로막는 벽은 쉽게 허물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소통의 기본은 듣는 것”이라며 “소통 방식도 직원들이 현장에서 내는 아이디어를 많이 참고한다”고 말했다.

만난 사람=남윤호 금융팀장

정리=김원배 기자, 일러스트=박용석 기자

◇신창재(55) 회장=창업자인 고 신용호 회장(2003년 작고)의 장남. 경기고와 서울대 의대를 나와 서울대 의대 교수(산부인과)를 지냈다. 96년 11월 교보생명 이사회 부회장이 됐고, 2000년 5월 대표이사 회장에 오르면서 경영 전면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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