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대만 사실상 영사관 개설 … 관계 급진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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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분단 이후 최대 뉴스가 터져 나왔다.”

중국과 대만 기자들의 반응이다. 9년 만에 재개된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협상이 가져온 성과는 그만큼 메가톤급이다. 취재에 참가한 400여 언론사가 모두 흥분했다. 이유는 하나다. 12일 전격 공개된 ‘양안 대표사무소 개설’ 때문이다.

대만 측 협상기구인 해협교류기금회(해기회)의 장빙쿤(江丙坤) 이사장과 중국 측 해협양안관계협회(해협회)의 천윈린(陳雲林) 회장은 베이징(北京)에서 12일부터 이틀간 협상을 벌였다. 해기회와 해협회가 다시 자리를 마주한 것은 1999년 이후 처음이다.

장 이사장과 천 회장은 상대방 수도에 연락사무소에 해당하는 반관영 대표처를 설치키로 공식 합의했다. 사실상 비자 발급 등을 처리하는 영사관을 설치하는 셈이다. 서로를 ‘미수복 지구’로 규정하면서 존재 자체를 거부했던 지금까지의 태도를 청산하고 상대를 ‘국제사회의 구성원’으로 공식 인정한 것이다.

베이징의 한 외교 소식통은 “양측이 연락사무소를 개설키로 합의한 것은 양안 교류 역사상 가장 중대한 진전”이라며 “앞으로 양안 간 교류는 국제사회에서의 정식 외교활동에 준하는 영역으로 접어들게 됐다”고 평가했다.

중국 언론들도 일제히 흥분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산하 환구시보(環球時報)는 13일자 1면 머리기사를 통해 “양안이 의외의 성과를 도출해 냈다”고 평가했다. 대만의 대표적 통신사인 중앙사(中央社)는 “양안이 대표처를 설치해 비자 발급 등 양국 교류에 필요한 업무를 처리키로 합의한 것은 양안 협상사에 큰 획을 긋는 중대한 사안”이라고 평가했다.

대만 연합만보도 “대표처 설치는 장 이사장이 제의했고, 이를 천 회장이 적극 수용하면서 합의에 이를 수 있었다”며 “이로써 양안이 합법적으로 교류할 수 있는 제도적 기틀이 마련됐다”고 분석했다.

대표처 설치는 단순히 양안 간 의사소통 기구가 상설됐다는 차원을 넘어선다. 중국과 대만이 서로를 ‘국제외교 무대에서의 정식 파트너’로 인정한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중국은 이를 위해 이미 대만 접촉 창구를 모두 외교통으로 물갈이했다.

이런 변화는 대만 독립을 배척하고 중국과 화해를 중시한 국민당의 마잉주(馬英九)가 올 3월 총통 선거에서 승리하면서 예견됐던 일이긴 하다. 그렇지만 이번 협상에서 의제에 오르지 않았던 연락사무소 설치 문제가 급작스럽게 합의된 것은 양안 간의 협상 분위기가 분단 이래 최고조에 이르렀다는 점을 보여 주는 상징적인 사례다.

중국과 대만은 이번 협상에서 이 밖에 ▶주말 전세기 운항 ▶양안 핫라인 설치와 전담 연락인 지정 ▶양안 교류 관계자의 정기적 상호 방문 ▶해저유전 공동 탐사 ▶천 회장, 연내 대만 방문 등에 합의했다.

양측은 또 ▶중국 관광객의 대만 관광 허용 ▶대만 내 인민폐 통용 ▶3통(통상·교통·우편 교류) 확대 ▶해운 직항 ▶공동 범죄 예방 등에 대해서도 원칙적인 합의를 봤다.

베이징=진세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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