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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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코펜하겐의 호텔로 돌아오며 인어공주상을 보았다.항구 바닷가 바위 위에 조신하게 앉아있는 자그마하고 깜찍한 동상.한바다를 향하고 있는 표정이 마냥 애잔하고 청순하다.
언젠가 이 동상은 밤 사이에 머리를 잃어버렸었다.누군가가 동상의 목을 잘라 훔쳐가버렸다던가.널리 알려진 인어상을 팔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인어상에 반한 누군가의 짓이 분명했다.
볼 나위 없이 목 잘린 인어공주상은 곧 복원되었다.얼굴을 다시 만들어 붙인 것이다.그러나 코펜하겐 시민들이 입은 상처는 오래도록 아물지 않았다.아리영과 어머니가 덴마크를 찾았을 때도이따금 그 일이 화제로 삼아지곤 했다.
『야만이 따로 없어요.』 『덴마크의 수치예요.』 『문학과 예술의 이름으로 슬퍼합니다.』 그 반응은 당연했다.적어도 당시의아리영은 그렇게 여겼다.하지만 이제 와 생각하니 그 범인의 집착을 알듯도 싶다.죽도록 갖고 싶은 욕망.그것이 사랑이기 때문이다.결코 가질 수 없는 우변호사를 죽도록 갖고 싶어지는 욕망과 무엇이 다 른가.범인은 욕망을 행동화했다.단지 그 차이가 있을 뿐이다.
안데르센의 『인어공주』는 짝사랑의 슬픈 이야기다.
…바닷속 깊은 곳에 살고 있던 인어공주는 어느날 수면 위에 떠올라 지나가는 배구경을 하다 난간에 기댄 늠름한 왕자한테 사랑을 품게 된다.
인어의 상체(上體)는 사람 모양이지만 하체(下體)는 물고기 모양이다.왕자와 같은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두 다리를 얻어야 한다. 인어공주는 마녀를 찾아가 의논한다.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하는 네 혀를 내게 주면 다리를 만들어 주마.』 인어공주는 자기 혀를 마녀에게 주고 두 다리를 얻었다.벙어리가 된 것이다.
인어공주는 곧장 물 위 세상으로 가 왕자와 함께 살게 된다.
벙어리인 인어공주는 왕자를 사랑하고 있다는 말을 하지 못한다.
왕자는 이웃나라 공주와 결혼하게 된 다.왕자가 다른 여자와 결혼하면 그 다음날 아침 인어공주의 심장은 터지고 몸은 물거품이되어 녹아버리고 만다.다만 왕자의 심장을 찔러 그 솟구치는 피를 다리에 받으면 인어의 하체는 되살아나고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 인어공주는 왕자를 죽이지 못한채 바다에 몸을 던져 거품이 되고 죽는다.
그후 인어공주는 공기가 되어 다시 살아나 하늘로 올라간다….
안데르센의 동화 속에선 늘 행복과 불행이 교차된다.행복 뒤에불행이 오고,그 불행 뒤에 또 하나의 차원 높은 행복이 오고-.어머니는 그것을 「안데르센식 행복의 변증법(辨證法)」이라 불렀다.
글 이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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