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 커트라인 적중' 유명세 오르비 벌써 7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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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수능 ‘물모의’ 였어요.”

12일 오후 한 사설학원의 모의고사가 끝나자 수험생들이 적은 모의고사 평이 올라온다. 모의고사가 쉬웠다는 뜻으로 ‘물모의’라는 평이 많다. 학생들은 서로의 점수와 체감 난이도를 비교하며 앞으로 공부 방법을 토의한다. 수능용 ‘아고라’격인 오르비스 옵티무스의 모의고사 게시판이다.

대한민국에서 ‘공부 좀 한다’는 수험생이라면 누구나 들어본 사이트인 오르비스 옵티무스(orbi7.com, 약칭 오르비)가 창립 7년을 맞는다. ‘최상위권 학생 모임’이라는 뜻의 라틴어를 앞세워 출범한 오르비는 오늘날 상위권 수험생의 입시를 좌우하는 ‘태풍의 눈’이 됐다. 회원 수만 20만명이 넘는다. 당시 혈혈단신으로 오르비를 만들었던 재수생 이광복(26, 사진)씨는 이제 서울대 의학과 본과 4학년에 재학 중이다.

서울 영일고를 졸업한 재수생이던 이씨가 오르비를 설립한 것은 2001년 7월. 입시 게시판에서 갈 곳을 찾지 못한 상위권 수험생의 고충을 위해서다. 이씨는 “상위권 수험생이 마음 편히 ‘내 점수면 서울대 OO과 갈 수 있냐’는 질문을 할 곳이 없더군요”라며 설립의 변을 대신했다.

2001년 당시 이씨가 만든 오르비의 기능은 단 두 가지, 배치표 등을 게시하는 공지사항과 대입 토론을 위한 게시판이 전부였다. 유명 입시사이트와 비교하면 초라한 구성이지만, 수험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상위권 수험생들의 염원이라 할 수 있는 토론방이 생긴데다, 1점이 아쉬운 상황에서 정확한 배치표는 다분히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매년 이씨가 직접 작성하는 상위권 학과 배치표는 ‘잘 맞춘다’는 입소문이 날 정도로 높은 적중률을 자랑해, 수험생들 사이에서 입시학원보다 오르비를 먼저 참고하는 경향까지 생겨났다. 결국, ‘대한민국 상위 1% 수험생의 모임’이라는 카피로 시작된 오르비는 매년 성장을 거듭해 오늘날 대한민국 대표 입시사이트로 발돋움했다.

2002~2004학번에게는 추억이 된, ‘오르비 서버 다운’이라는 말도 있었다. 2001년 창립 이후 오르비는 수능 시험일, 수능 점수 발표일 등 1년에 2차례씩 서버가 다운됐다. 수만명의 수험생과 학부모가 동시에 접속한 탓이다. 이에 이씨 등 운영진은 매번 서버 다운에 대해 사과하고, 긴급 복구 작업에 밤을 새기도 했다. 그러나 한 독지가가 이들의 열정에 탄복해 서버 증설비를 지원하면서 ‘오르비 서버 다운’은 추억이 됐다.

오르비에는 시련기도 있었다. 훌리건(학벌 문화를 조장하고, 학교간 서열 논쟁을 부추기는 네티즌)이 활개를 쳐 게시판이 엉망이 된 것은 물론, 거짓 정보를 흘려 수험생들이 특정 학과에 지원하는 것을 꺼리게 만드는 ‘작전세력’도 있었다. 이씨를 비롯한 운영진은 수험생 커뮤니티로서 오르비의 신뢰성을 제고하고 훌리건 등 작전세력을 차단하기 위해 엄격한 실명제와 등급제를 실시하는 한편, 실시간 모니터링을 통해 ‘물 관리’를 하고 있다.

학원가의 러브콜도 거셌다. 이씨는 “사실 많은 곳에서 제의가 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특정 입시 기관에 가면 돈은 많이 벌겠지만, 모든 학생이 정확한 자료를 공유하게 하자는 취지를 지키기 위해 사양했다”고 덧붙였다. 대신 이씨는 의예과 재학 2년간 저술과 강연 활동에 전념했다. 오르비 회원들과 함께 상위권을 위한 고난도 문제집인 ‘숨마쿰라우데’ 시리즈를 집필하는 한편, 자신과 친구들의 공부법을 담은 ‘서울대 의대 3인 합격수기’, ‘오르비 회원들의 공부 방법’ 등의 책을 냈다. 2004년 그는 EBS 입시 설명회의 강사로 참여해 두 달 간 전국을 돌며 입시 전략을 강의했다.

오르비가 유명세를 타다 보니, 이에 편승하려는 학원과 업체의 ‘얌체 광고’도 많았다. 광고지에 ‘오르비 제휴’라고 쓰는 업체가 있는가 하면, 오르비의 마크나 이름을 도용한 학원도 있었다. 몇몇 강사는 아예 자신이 오르비의 창립자임을 내세우기까지 했다고. 이씨는 그러나 ‘오죽하면 그랬겠냐’는 생각에 소송을 제기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대신 이름을 도용한 학원의 사진을 찍어 ‘우리는 이 학원과 관련이 없다’는 내용의 공지를 올린적은 있다고 한다.

오늘날 오르비는 ‘웹 2.0’으로 진화하고 있다. 수험생 사용자들이 자발적으로 게시한 점수를 바탕으로 운영진이 각 학과의 지원 점수와 등급별 커트라인을 예측, 더 정확한 진학 정보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주관 모의고사가 시행될 때마다 수험생들은 오르비에 자신의 성적을 올리고, 운영진은 이를 바탕으로 1등급 커트라인과 상위권 대학 지원 가능 등급을 내놓는 형식이다. 200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도 956명의 수험생이 오르비에 자신의 성적을 공개했다.

오르비는 2008 수능 언어영역 1등급의 커트라인(90점 추정)을 적중한 것으로 유명세를 더했다. 언론에 의해 보도된 1등급 커트라인은 언어 90, 수리(가) 98, 수리(나) 93, 외국어 96. 이들 4과목의 실제 추정치와 수능 직후 각 입시기관의 예측치를 비교한 결과, 오르비는 메가스터디, 종로학원과 더불어 평균 오차 0.75를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메가스터디나 종로학원 등 기라성 같은 학원 그룹과 비등한 예측치를 내는 것에 대해 이씨는 “자신의 점수를 공개해 주는 회원들 덕분”이라며 수험생들에게 공을 돌렸다.

현재 오르비는 이씨를 비롯한 10명의 운영진이 관리하고 있다. 그러나 이씨는 아무리 바빠도 배치표 작성에는 직접 참여하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오르비의 운영자로서 책임을 다하겠다는 의지다. 10명의 운영진은 회원관리, 모니터링, 게시판 관리 등을 나눠 맡다가, 수능 시즌이 되면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배치표 작업에 들어간다.

7년간 수험생과 동고동락해온 이씨의 꿈은 정신과 의사다. 졸업 후 정신과를 전공해 수험생 정신과 치료의 권위자가 되겠다는 것이 그의 포부다. “모니터 여러 대에 가득한 입시 통계와 씨름하는 것이 즐겁다”는 그의 미소 속에 또 한 번의 변신을 위한 준비가 엿보였다.

이현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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