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프리즘>홍콩 영화감독 王家衛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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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왕자웨이(王家衛.38)감독은 자신의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들과 너무 다르다.고독하고 불안정하고 사랑에 버림받은 현대 도시의 젊은이들을 많이 그려왔지만 자신은 쾌활하고 유머감각이 뛰어나며 선글라스 뒤에 가려진 두 눈은 호기심으로 반 짝거린다.
영화의 주인공들은 외롭지만 그는 『나는 외로운 사람은 아니며단지 재미없는 사람일 뿐이다.그래서 영화를 만든다』고 말한다.
19세때 만나 오랫동안 연애한 여자와 7년전 결혼,아들 하나를두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는 그는 인생에서 외로웠을 때가 두번 정도 있었다고 한다.
첫 외로움의 경험은 다섯살때 홍콩으로 이주하면서 겪은 낯선 도시에서의 삶이었다.상하이(上海)에서 태어난 그는 부모가 자신만 데리고 홍콩으로 이주한 후 문화혁명 때문에 국경이 막혀 형.누나와 헤어져 살았다.광둥(廣東)어를 모르던 그 는 낯선 홍콩에서 외로움을 느꼈으며 당시 BBC 라디오방송에서 흘러나오는시그널뮤직을 벗삼아 외로움을 달랠 수 있었다고 회고한다.
그다음 외로웠다고 느낀 적은 『중경삼림』과 『타락천사』를 촬영할 때.아내가 아이 때문에 미국에 가있어 혼자 호텔생활을 했다.『중경삼림』에 나오는 호텔방이 바로 자신이 묵었던 호텔방과똑같은 곳이라고 한다.
王감독과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다보니 그는 어렸을 때부터 영화매니어였고 독서광이었으며 음악애호가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그리고 영화속에 등장하는 많은 장소들이 실제로 그의 생활과 연관된 곳이 많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그는 많 은 선배예술가들의 작품을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흡수했고 영화를 만들기시작하면서부터는 그 물을 자신의 독특한 감수성으로 채색해 시각화하고 영상화해왔다.
그는 『홍콩으로 이주한 아버지는 나이트클럽 매니저로 일했다.
이 나이트클럽은 「중경삼림」에 나오는 중경빌딩 지하에 있었다.
어머니는 영화광이어서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를 따라 하루에 두세편씩 영화를 보았다.아버지는 또 문학책들을 열심히 사 모았기 때문에 많은 책들을 읽을 수 있었다』면서 『젊었을 때는 한때 방탕한 생활을 하기도 해 영화속에 등장하는 뒷골목의 술집들을 많이 다녔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그의 첫작품 『열혈남아』는 마틴 스코시즈의 영화 『비열한 거리』를 떠올리게 하고 두번째 작품 『아비정전』을 본 사람들은 마누엘 피그의 『하트브레이크 탱고』란 소설을 얘기하기도한다.『중경삼림』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 의 숲』(우리나라 번역제목은 「상실의 시대」)과 비슷한 정서를 보여주며 『동사서독』은 무협작가 김용의 소설주인공들을 그린 것이다.
하지만 왕자웨이는 자신의 체험을 독특한 감수성과 영상미로 끌어내는 재주가 있다.그 자신도 『영화는 나에게 아름다운 추억이다.나는 어려서부터 많은 영화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으며 그 아름다운 추억들을 영상으로 끌어내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영화들이 외로움과 절망을 그리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단호히 『그렇지 않다』고 항변한다.자신은 외로움을 딛고 선 희망을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이번 첫 방한의 목적이기도 한 신작 『타락천사』(23일 개봉)를 예로 들면서 그는 『이 영화는 마지막 장면에 메시지가 담겨 있다.냉정한 현대사회에서 두 남녀가 따스함을 느끼고 그 따스함을 찾아가는 이야기』라고 말한다.
그는 그래도 많은 한국의 젊은이들이 영화 속 주인공들의 외로움,허무주의등에 공감한다는 사실을 우리나라의 정치적 상황과 연결시켜 생각하는 점에 대해서는 『외로움과 방황,허무주의는 젊은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정서다.하지만 하루키의 소설이나 내작품은 그래도 삶은 계속되니 걱정하지 말라는 것을 이야기 하고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중경삼림」이나 「타락천사」는 대도시에 사는 젊은이 이야기다.세계는 점점 좁아져 모든 도시가 비슷해지고 있다.
어딜 가나 맥도널드 햄버거가게가 있고 편의점이 있다.그렇기 때문에 홍콩 이야기라도 서울의 젊은이들이 자신의 이 야기로 느낄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인다.
그는 좋아하는 감독이나 자신에게 영향을 준 선배가 누구인지에대해서는 『내겐 영화 그 자체가 스승이다.어려서부터 영화를 많이 봤기 때문에 내 영화 속에는 부분부분 많은 선배들의 영향이담겨있어 딱이 누구를 지적하라는 것은 불공평하 다』고 대답한다. 그는 자신의 두번째 작품 『아비정전』을 이야기하면서 『「열혈남아」가 좋은 평을 얻어 많은 제작자들이 제작을 의뢰했는데 「아비정전」의 흥행실패로 제의가 일제히 없어졌다』고 웃었다.그는 이어 『「아비정전」은 어렸을 적의 외로웠던 기억 들을 되살리기 위해 60년대를 설정해 만들었다.』 『속편을 만드는 것은나의 꿈이지만 여러가지 여건이 어렵다.배우들의 개런티가 너무 높아졌고 또 홍콩이 많이 변화하기 때문에 당시 촬영했던 장소들이 지금은 없어져 세트로 만들어야 하는데 그 돈도 만만찮다』고덧붙였다.
『동사서독』에 대해서는 『나는 김용의 무협소설에서 동사와 서독이란 인물만 따왔다.나는 그의 소설을 읽으면서 두 인물이 과연 젊었을 때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매우 호기심이 일었고 그래서그것을 작품으로 만들어 보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의 「왕자웨이현상」에 대해 무척 놀라면서 『내 영화가 왜 한국 젊은이들을 사로잡는지 알아보러 왔다』고 말했다.그는 한국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거의 없으며 어렸을 때 어머니와함께 본 『양귀비』란 영화가 한국영화에 대한 유 일한 경험이라고 털어놓는다.
독특한 영상미로 젊은 감각을 보여주는 그는 『나는 촬영할 때완벽한 시나리오로 출발하지 않는다.촬영도 그때그때 아름다운 장면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넣는다』고 말했다.
젊은이들을 사로잡는 왕자웨이.그는 스스로 젊다고 생각한다.그는 『어렸을 때는 30세가 넘으면 이미 늙은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40이 가까워오는데도 나는 여전히 젊다고 느낀다.항상 젊음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그러나 요즘의 진짜 젊은 세대가 무엇을 생각하고 고민하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한다.
기성세대가 되기를 거부하는 영원한 「철부지」 왕자웨이.그가 영원히 젊은이의 문제를 그릴 수만은 없을 것이다.
그는 앞으로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으냐는 질문에 『공포영화와SF(공상과학)영화를 하고 싶다』고 선뜻 대답했다.왕자웨이와 왕자웨이영화가 어떻게 나이를 먹어갈지 지켜볼 일이다.
글=이남.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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