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 잦은 아이, 식습관 때문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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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기·기관지염을 달고 사는 아들(4) 때문에 걱정이 태산인 김우정(37·서울 마포구)씨. 최근 한의원에서 뜻밖의 말을 들었다.

한의사는 “아이의 폐·기관지 등 호흡기는 건강한데 식습관이 잘못돼 기침을 계속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김씨가 “음식(소화기)과 감기(호흡기 질환)가 무슨 관련이 있느냐”고 묻자 한의사는 “소화기와 호흡기는 서로 깊은 영향을 미친다”고 답변했다.

한방에선 이처럼 잘못된 식습관이 오래 쌓여 생긴 병을 식적(食積)이라 한다. 만성 식체 증후군이라고도 부른다.

『동의보감』에선 식적을 음식상(飮食傷)의 일종으로 봤다. 음식상은 노권상(勞倦傷:정신·신체적으로 피곤해 기를 상한 상태)과 다른 것이다. 손으로 명치 끝을 눌렀을 때 안 아프면 노권상, 아프면 음식상으로 진단한다.

◇식체와는 다르다=과식하거나 급히 식사를 한 뒤 속이 갑갑하고 배가 아프면 흔히 ‘체기가 있다’ ‘식체가 생겼다’고 표현한다. 이때 소화제를 먹거나 손가락 끝을 따서 사혈(瀉血)하면 증상이 금세 사라지기도 한다.

급성인 식체와는 달리 식적의 증상은 만성적이다. 식적이 있으면 명치 끝과 배꼽 주위가 지속적으로 더부룩하고 답답하며 아프다.

경희대 동서신의학병원 소화기·보양클리닉 박재우 교수는 “식적 환자는 체기를 자주 느끼고 늘 기운이 없어 하며 만성 소화 불량·의욕 저하·복통에 시달린다”며 “배에서 덩어리 등 단단한 것이 만져지고 신물이 올라오며 입맛이 떨어져 체중이 줄기도 한다”고 조언했다. 이들은 양방에서 위내시경 검사를 받아도 대개는 이렇다할 진단이 내려지지 않는다.

◇식적이 감기로 발전하는 이유=영·유아 등 어린이도 식적으로 고통 받을 수 있다. 아이가 식적이 있으면 공복에도 배가 부풀어 있고 입·대변 냄새가 심하다. 가슴·등에서 열감이 느껴진다. 위가 쉬지 못하고 ‘과로’에 시달려 몸에 열이 쌓인 결과다. 식적이 있는 아이가 ‘등이 가렵다’며 긁어 달라고 보채고 잠을 잘 자지 못하며 시원한 곳을 찾아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것은 이래서다. 염소 똥 모양의 대변을 보거나 피부에 두드러기·뾰루지가 올라오기도 한다.

마포 함소아한의원 최승용 원장은 “자녀의 식적을 방치하면 잔 기침·코막힘 등이 지속되면서 비염·천식 등으로 발전할 수 있다”며 “식적 어린이의 위장은 늘 부어 있는 상태여서 인접한 횡경막 등 폐와 관련된 기운의 흐름을 방해, 감기 등 호흡기 질환에 걸리기 쉽다”고 설명했다. 식적이 오래 돼 아이의 호흡기까지 영향을 미쳤다면 가래가 늘 그렁그렁하고 밤에 기침이 나며 콧물이 그치지 않는다.

◇두통·요통·아토피도 유발=‘식적 요통’ ‘식적 두통’이란 한방 질병명이 있다. ‘식적 두통‘은 대개 과식했을 때 나타난다. 식사 뒤 머리 앞쪽에서 통증이 느껴진다. ‘식적 요통’은 『동의보감』에 나오는 10가지 요통 중 하나. 소화 불량·만성 위염이 있거나 과식한 뒤 허리가 뻐근하게 아파오는 것이 주증상이다. 평소 소화가 잘 되지 않는 사람이 요통으로 고생한다면 허리의 문제가 아니라 식적이 원인일 수 있다.

식적은 또 피부 가려움증·아토피를 유발할 수 있다. 음식의 독소가 몸안에 쌓인 탓이다.

◇식적 예방법=식적은 잘못된 식습관이 원인이다. 자주 폭식을 하거나 달고 찬 음식을 즐기는 사람이 잘 걸린다. 삼겹살, 튀김 등 기름진 음식, 면 등 밀가루 음식을 즐기는 것도 식적의 원인이다. 돌이 지났는데도 분유·우유를 하루에 1000mL 이상 마시고 음식을 잘 씹지 않고 삼키는 영·유아에게 잦다.

미소가인S한의원 한주원 원장은 “식적을 예방·치료하려면 과음·과식은 절대 금물”이며 “라면 등 밀가루 음식, 아이스크림·청량음료 등 찬 음식은 삼가고 인삼차·생강차 등 속을 따뜻하게 하고 소화를 돕는 차를 수시로 마실 것”을 권했다.

자녀가 아이스크림 등 찬 식품을 먹으면 따뜻한 물을 몇 모금 마시게 해서 위를 진정시키는 것이 좋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2시간 이상 공복상태를 유지, 수면 도중 위가 편히 쉴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방법이다. 돌이 지난 아이에겐 자기 전 우유 섭취를 금한다.

식적은 침 치료가 가능하다. 대표적인 한방약은 ‘평위산’. 위를 평평하게 한다는 뜻이다. 소화액이 많이 나오게 해서 소화를 돕고 배에 찬 가스를 몸 밖으로 빼주는 것이 이 약의 효과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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