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왕이 청했다 … ‘그의 기타’를 만들어 달라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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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거 보드가 곧아야 하는데 그냥 봐선 안 보여요. 이렇게 봐야지.” 김용만 사장의 눈이 날카롭다. 옆집 아저씨처럼 허허 웃던 모습은 간데없다. [사진=박종근 기자]

가수 조용필씨가 ‘데뷔 40주년 기념공연’에서 김용만 사장이 만든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하고 있다. [중앙포토]

열창하는 ‘가왕(歌王)’ 앞에서 5만 관객은 넋을 잃었다. 지난달 24일 ‘조용필 데뷔 40주년 기념 공연’이 열린 서울 잠실 주경기장. “조용필, 조용필!”을 환호하는 관객 사이에 ‘와이맨(y-man)’의 김용만(54) 사장도 있었다. 그는 조용히 무대만 바라봤다. 그의 눈에는 조명 아래 빛나는, 조용필씨의 어깨에 걸린 하얀 일렉트릭 기타만 들어왔다.

“너무 좋죠. 그냥 좋았어요.”

공연을 보는 기분이 어땠느냐는 질문에 그는 짧게 답했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기타를 만든 지 36년. 자기 손으로 만든 기타가 가왕의 40년 노래 인생을 되돌아보는 무대에 올랐는데.

이번 무대에서 김 사장의 기타가 연주됐다는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사실 이름 있는 일렉트릭 기타는 모두 미국이나 일본에서 제작된 것이다. 양대산맥으로 꼽혀온 깁슨이나 펜더는 물론 초고가의 ‘제임스 타일러’부터 중저가급 ‘아이바네즈’까지 모두가 그렇다. 많은 연주자가 외국산을 쓰고 조용필씨도 지난해까지 ‘제임스 타일러’를 연주했다.

그런데 누구보다 예민한 귀를 가졌을 조용필씨가 손에 익은 기타를 두고 와이맨의 기타를 연주한 것이다.

“밴드 ‘위대한 탄생’에서 기타 치는 최희선씨가 우리 고객인데, 조용필씨한테 한번 써보라고 했대요.”

최씨는 김 사장에게 자신의 이름을 새긴 ‘시그너처 기타’ 두 대를 주문해 가져간 뒤 그중 한 대를 조용필씨에게 권했다고 한다.

“아무 말 없었대요. 그분이 싫으면 싫다고 말해도 좋은 건 표현을 잘 않는 분이라는데, 우리 기타 쓰고 아무 말 없었다네요. 허허.”

말을 아끼던 그가 잘난 자식 자랑하고픈 속내를 슬쩍 드러냈다.

김 사장이 악기와 연을 맺은 것은 열 여섯 살 때. 목수였던 매부에게서 일을 배웠다.

“가수 최숙자라고 있었는데, 그 양반이 매부한테 기타 통을 주문했대요. 그래서 매부가 악기를 만들기 시작했고 제가 그 밑에서 일을 배웠어요. 그땐 주로 미8군에서 밴드 하던 분들이 주문을 했죠.”

선생님은 매부뿐이었다. 펜더니 깁슨이니, 구하는 대로 수없이 뜯어보고 조립하며 독학을 했다. 미8군 밴드들이 인천에서 만드는 기타라고 ‘인천 기타’라고 이름을 붙여줬고, 어느새 그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2002년 낙원상가에 자리를 잡고나서 30년을 함께했던 ‘인천 기타’ 대신 ‘와이맨’이란 새 이름을 붙였다.

“제 이름이 용만이잖아요. 용에서 와이, 만에서 맨, 와이맨이에요. 깁슨이나 펜더·테일러 등 유명한 기타는 전부 만드는 사람 이름 따서 불러요. 자기 이름 달고 세계 최고 인정받는 거 보니까, 그렇게 되고 싶어서 제 이름을 달았어요.”

그의 바람대로 뮤지션들이 그의 악기를 찾기 시작했다. ‘사랑과 평화’의 최이철, ‘부활’의 김태원 등 내로라 하는 기타리스트들이 와이맨의 기타로 연주를 한다. 진열 중인 기타에는 KBS ‘개그콘서트’에서 연주를 맡은 이태선씨의 사진도 붙어 있었다.

지금 김 사장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조용필 시그너처’ 기타를 만드는 것이다.

‘좋아도 좋다고 말하지 않는다’는 가왕은 말 대신 자신만의 기타를 만들어 달라는 주문으로 김 사장의 기타를 인정한 것이다.

“빨리 만들어 달라고 하는데 다음달이나 돼야 할 것 같아요. 이제 기획 들어갔는데 작업이 복잡해요. 아마 (조용필 데뷔 40주년 기념) 지방 공연에서는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내가 만든 것 가운데) 아직 만족스러운 게 한 번도 없었는데 이번엔 정말로 잘 만들어 봐야죠.” 

글=홍주희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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