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청거리는 베트남 경제 … 현장에 가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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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6일 하노이 공항 면세점 초콜릿 매장에 “당분간 동화(VND)는 받지 않는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이달 들어 하노이 공항 면세점에서는 베트남 통화인 동화로 물건값을 치를 수 없다. [사진=최현철 기자]

6일 오후 베트남 하노이시에서 외국인들이 몰려 사는 중화지역의 한 금은방. 10달러를 내자 주인은 베트남화로 18만 동을 내줬다. 베트남에서는 은행 외에 환전이 불법이지만 달러만 있으면 쉽게 고시환율(달러당 1만6250동)보다 높은 환율에 동화를 구할 수 있다. 이 주인은 “환전한 돈은 달러당 2만 동에 암달러 도매상에 넘긴다”고 귀띔했다.

◇동화 가치 급락=하노이 공항의 면세점에서는 이달부터 아예 동화를 받지 않는다. 과자나 토산품을 파는 가게는 동화를 받지만 환율은 멋대로다. 한 매장에서는 11달러라는 가격표가 붙은 토산품 인형 세 개를 75만 동에 팔았다. 고시 환율보다 40%나 비싸다.

지난해 부동산과 주가 급등으로 떼돈을 번 부유층들은 경제상황이 나빠지자 달러와 함께 금 사재기에 한창이다. 금은방에선 1태얼(37.5g)짜리 작은 금괴가 없어서 못 팔 정도다. 이날 오후 하노이시 빅C 쇼핑센터 내 귀금속 전문점 종업원은 “아침에 들여온 물량은 오전에 이미 다 팔렸다”고 말했다. 이 같은 사정을 반영해 지난주 역외 선물환(NDF) 시장에서 12개월물 베트남 동화 환율은 달러당 2만2250동까지 치솟았다. 모건스탠리는 “1997년 태국 바트화 폭락과 유사한 사태가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베트남 당국은 외환위기설을 일축했다. 베트남 증권감독위원회(SSC) 도안 흥 부위원장은 “베트남은 태국이나 한국과 다르며 역외 선물환은 예상일 뿐 현재 상황을 반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무역적자 해소에 올인=베트남 정부도 대책 마련에 고심 중이다. 베트남 중앙은행은 지난달 공공부문 투자와 사치품 수입 축소, 금리 인상 등 일곱 가지 대책을 내놓았다. 말이 축소와 감소일 뿐 무역수지와 물가에 영향을 주는 행위는 아예 금지됐다.

골든브릿지증권 변원섭 하노이지사장은 “신용장 개설 담보 비율이 5%에서 100%로 올라 개설 자체가 불가능한 상태”라고 말했다. 연 8.5%였던 금리는 최근 12%로 올랐지만 그나마 대출 자체가 중단된 상태다.

다소 무리가 따르더라도 강력한 긴축정책이 3~4개월 뒤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하면 무역적자는 해소된다는 게 베트남 당국의 판단이다. 하지만 벌써부터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최대 국책은행인 비엣콤 뱅크 응우옌 반 뚜안 부행장은 “은행에서 돈을 빌려 부동산과 주식투자를 했던 기업들의 1분기 실적이 나빠졌다”고 전했다. 기업들이 주저앉으면 돈을 빌려준 70여 개에 이르는 중소규모 은행들도 부도 위기에 몰리게 된다. 대출 길이 막힌 국영기업들이 보유하던 원자재나 중간재를 시장에 헐값에 내다 팔기 시작했다. ㈜쌍용 유치훈 하노이지사장은 “재고는 내다 팔고, 새로 수입은 막혀 3~4개월 뒤에는 원자재난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연말이 고비=베트남 증감위 도안 흥 부위원장은 “연말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내년부터는 경제와 주식시장이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현지에 진출한 한국 기업인들도 베트남 경제가 급격히 붕괴될 가능성에 대해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 개발하지 않은 자원이 풍부한 데다 여차하면 다시 경제 빗장을 걸어닫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국투자증권 김승환 호찌민 사무소장은 “태국과 달리 아직 공산주의 경제인 만큼 역외 시장의 환율 급등 때문에 외환위기로 치닫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노이=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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