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론>擬似과학이 번창하는 까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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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어떤 사회에서 의사(擬似)과학(pseudo-sciences)이 번창하는 까닭은 밝히기 어렵다.그러나 사회 구조에 대한 믿음이 약해지거나 미래에 대한 불안이 커지는 것이 그것을 돕는 것은 분명하다.문민정부에 정면 도전한 전두환(全斗 煥)씨의 대국민담화에 이어 전격 집행된 全씨의 구속등으로 정국은 극도의 혼미속에 빠져들고 있다.한치앞을 내다볼 수 없는 큰 정치적 사건들이 잇따라 뒤숭숭한 우리 사회에서 의사과학이 번창하는 것은그래서 자연스럽다.점술가들은 인기가 높고 풍수지리설과 창조론은과학의 반열에 오르겠다고 목청을 높인다.
요즈음엔 「미확인 비행물체(UFO)」까지 가세했다.그것에 관한 책들이 관심을 끌고 목격 사례가 늘더니,특집 방송까지 나왔다.얼마전 KBS에서 내보낸 『추적,UFO의 비밀』은 공익을 앞세우는 방송사가 적잖은 투자를 해서 만든 프로그 램이고 의사과학의 특질들을 잘 드러냈다는 점에서 자세히 살펴볼 만하다.
그 프로그램의 알맹이는 이른바 「로즈웰 사건」의 외계인들을 부검하는 장면을 담았다는 필름이다.로즈웰 사건은 1947년 미국 뉴멕시코주 로즈웰 근처의 사막에 비행접시가 추락했다는 주장을 가리킨다.그 프로그램은 전문가들의 증언을 통해 그 필름의 조작 여부를 가리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그 필름의 진실성이 대체로 증명되었다는 결론을 끌어낸다.그래서 UFO엔 외계인들이 탔다는 「외계가정(假定.extra-terrestrial hypothesis)」에 호의적이다.
아쉽게도 그 프로그램은 객관성을 제대로 지니지 못했다.외계가정의 성격을 폭 넓게 살피지 못했고 그나마 자문에 응한 전문가들은 대부분 UFO 열기에서 이익을 볼 사람들이었다.
외계 가정에 비판적인 사람들과 그들의 저술들을 쉽게 만날 수있으므로 그런 편향은 이해하기 어렵다.이 분야의 선구자는 미국수학자 마틴 가드너로 그의 첫 저서 『과학의 이름으로』(1952년)는 이제 고전으로 자리잡았다.가드너는 과 학 대중화에 공헌해 이름을 얻었지만 자신이 마술사라는 점을 활용해서 과학자들까지 인정한 심리적 초능력의 사례들이,실은 마술을 이용한 눈속임이라는 것을 밝힌 일로도 유명하다.
UFO 목격담들엔 그것들의 의사과학적 성격을 잘 드러내는 특질들이 있다.먼저 UFO는 당시의 기술에 맞는 형태로 목격되었다.옛날엔 빗자루를 탄 마녀들로 나타났고 19세기 말엽엔 비행선들로 나타났다.비행접시들이 목격된 것은 1947 년부터였다.
다음엔,외계인이 탄 비행접시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은 그들의 추론이 논리적 결함을 안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UFO들이모두 합리적으로 설명되지는 못하지만,합리적으로 설명되지 못하는사례들이 외계인이 탄 비행접시의 존재를 가리키 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비행접시를 믿는 이들은 정부나 과학계가 UFO나 외계인의 존재를 은폐해왔다고 주장한다.로즈웰 사건은 전형적이니,1947년 이래 그것은 많은 음모설들의 주제가 되었다.이번 필름은 그런 음모설들이 내놓은 「증거」가운데 최근의 것이다.그런은폐의 목적이 뚜렷하지 않다는 점과 오랫동안 은폐하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점은 그들에겐 별다른 무게를 지니지 못한다.
따라서 외계 가정에 호의적인 견해들이 주류를 이루었더라도 비판적 견해들에 조그만 자리라도 돌아갔다면,시청자들은 증거들을 스스로 평가할 수 있었을 것이고 그 프로그램의 부정적 효과는 상당히 줄어들었을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점.풍수지리설 또는 창조론을 믿는 사람들은 무척 많다.따라서 대중 매체들이 그것들을 많이 다루는 것은자연스럽다.그러나 의사과학의 폐해들을 외면하기는 어렵다.그래서의사과학을 다룰 때,그것에 회의적인 견해들도 받아들여 균형을 지니려고 애써 달라는 얘기는 흥미를 첫째 덕목으로 삼아야 하는대중 매체들에도 무리한 요청이 아닐 것이다.
(소설가) 복거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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