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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나라의 조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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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세 살, 다섯 살짜리 딸을 둔 핀란드의 워킹 맘 요한나 콜호넨(38). 두 번의 출산을 전후해 그는 11개월씩 쉬었다. 그가 일터에 복귀한 뒤에는 남편이 바통을 이어받아 1년씩 육아휴직을 했다. 핀란드는 자녀가 태어나면 부모 중 어느 쪽이든 최대 3년간 휴직할 수 있다. 그래서 젖먹이를 맡아주는 국공립탁아소가 널려 있어도 아이가 두어 살 될 때까진 대개 집에서 부모가 돌본다.

콜호넨의 큰딸은 언어장애가 있다. 일주일에 언어치료 두 차례, 운동치료를 한 차례 받는다. 비용은 국가에서 다 댄다. 정기적으로 소아신경 전문의를 찾아가 X선·자기공명영상촬영(MRI)·유전자 이상 검사 등 다양한 검진도 받는다. 그때마다 22유로(약 3만5000원)의 접수비만 내면 끝이다. 건강보험 덕분이다.

그러니 “애 키우며 일하느라 고생” “장애아 부모 노릇 하기 힘들다”는 푸념이 나올 리 없다. 콜호넨은 대신 “나는 복 받은 납세자”란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세금 내는 게 털끝만치도 아깝지 않단다. 핀란드는 소득세율이 최고 50%에 달해 유럽에서도 세금 많기로 손꼽히는 나라다. 하지만 국민들은 별 불만이 없다. 허투루 새는 돈 없이 국민들 삶의 질을 높이는 데 두루 들어간다고 믿기 때문이다.

특히 세금 잘 쓰는 예로 꼽히는 분야가 교육이다. 핀란드는 초등학교부터 대학원까지 교육비가 한 푼도 안 든다. 절대 돈 없어서 공부 못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국민적 합의에 따른 것이다. 유일한 신분 상승의 도구가 교육이니 누구에게나 동등한 기회를 주어야 하기 때문이란다. 공짜라고 질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교사 대부분이 석·박사인 핀란드 공교육의 경쟁력은 짜하게 소문난 지 오래다. 외국인도 세금만 내면 똑같은 혜택을 주기에 이웃 나라에서 교육 이민을 오는 이도 상당수다.

최근 핀란드에 가서 이모저모를 취재하다 보니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느낌이었다. 복지가 성장의 발목을 잡지 않을까 근심하는 나라에서 온 이방인의 눈에 핀란드가 이룬 복지와 성장의 절묘한 균형은 도무지 현실 같지가 않았다. 땅 덩어리는 넓은데 인구는 530만 명에 불과하고, 방대한 삼림자원과 초일류기업 노키아라는 든든한 믿을 구석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변변한 자원도 없이 4900만 명이나 건사해야 하는 나라가 따라 하다간 가랑이 찢어지기 딱 좋을지 모른다. 그래도 확실히 챙기고 넘어가야 할 교훈이 있다. “문제는 교육과 건강”이란 얘기다.

덴마크(1위), 스위스(2위), 오스트리아(3위), 아이슬란드(4위), 핀란드(6위), 스웨덴(7위)…. 2006년 영국 레스터대가 뽑은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들의 공통분모를 찾아보니 바로 양질의 교육과 우수한 건강보험 제도였다. 핀란드만 봐도 안다. 공짜 교육과 공짜에 가까운 의료서비스, 그 덕에 춥고 어둡고 긴 겨울로 우울증에 빠지기 십상인 이 나라 사람들이 행복을 느끼며 살 수 있는 거다. “핀란드에 태어난 건 복권에 당첨된 거나 마찬가지”라며 으스댈 수 있는 거다.

레스터대가 행복한 나라 순위를 매기던 무렵, 영국인 대다수는 국민을 부자로 만들어 주는 정부보다는 국민을 행복하게 만드는 정부를 원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었다. 그런데 한국은 어떤가. 천문학적인 사교육비에 갈수록 치솟는 대학 등록금으로 허리가 휘는데도 누구 하나 값비싼 교육의 질에 만족하는 이가 없다. 적자투성이 건강보험도 위태위태해 맘 놓고 아플 수도 없다. 형편이 이런데 의료보험 민영화가 어떠니, 몰입교육이 어떠니 깊은 생각 없이 떠들어대니 국민들이 쇠고기를 핑계 삼아 촛불 들고 거리로 나선 게 아닌가. 국민을 부자로 만들기에 앞서 어떻게 하면 국민이 행복을 느낄지 고민해야 하는 게 정부가 할 일이다. 다시 말하지만 문제는 교육과 건강이다.

신예리 국제부문 차장